아빠의 희망과 아들의 절망

2018년 아들(7화)

by 정태산이높다하되

아들, 내 안의 이기적 유전자가 만든 존재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란 뜻이다. 그리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는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다는 '신탁'을 듣고, 아들의 발목을 묶어 산에 버리게 했다. 라오스의 뜻과는 달리, ‘부은 발’은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에게 입양된다. 그런데 이 아들, 오이디푸스 또한, 자신이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하게 된다는 어이없는 '신탁'을 듣게 된다. 자신을 키운 코린토스의 부모가 친부모라 믿었던 오이디푸스는 그들을 떠나게 되고, 자신의 고향 테베를 여행하던 중 한 노인을 만나 다툼 끝에 살해하게 된다. 그 노인이 자신의 친부, 라이오스였던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자신의 친모인 이오카스테를 왕비로 맞이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에 관한 내용이다. 이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오이디푸스 컴플레스'라는 일종의 정신적 병리현상을 주장한 사람이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태생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적대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유년기

맞벌이였던 우리 부부의 아들은 유년시절부터 부모를 떠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에게 각 1년씩을 살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사를 두어 번 다니느라 전학도 그만큼 해야 했다. 당시 우리 부부의 삶은 고단했다. 특히, 아빠인 나는 아들을 가슴 깊이 사랑해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고백하자면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어린 아들이 학교를 옮기면서 받았을 스트레스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아빠였다. 출장과 야근, 술 접대로 항상 피곤에 절어 있었고 당연히 아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않았다. 일요일마다 간헐적으로 같이 다니던 목욕탕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아주거나 집 앞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하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형식적인 행위를 하면서 아빠 흉내만 냈던 것 같다. 아주 가끔 놀이공원에라도 가면, 나는 차에서 잠을 자면서 아내와 아들의 놀이가 끝나길 기다렸다.


별 일 아닌 일상에서조차 아빠만 곁에 있으면 좋아서 깔깔거리던 아들, 아빠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빠의 모든 행위를 흉내 내며 웃던 아들,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던 어린 아들은 이제 없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흐를 줄 알았더라면,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이렇게 사무치게 후회스러울 줄 알았더라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었어도 죽도록 놀아줬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천진난만했던 아들의 맑은 눈을 보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나는 냉정하고 재미없는 아빠였을 수가 있을까. 배드민턴을 가르칠 때도, 자전거를 가르쳐 줄 때도 꼬마 아들은 "다시는 아빠랑 안 해!" 하면서 종국엔 씩씩 거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빠가 너무 불친절했으니까. 이 또한 다 지나고 나니 든 생각이다. 가끔 젊은 아빠였던 시절의 사진 속 나에게 명령한다. "좀 웃어라 웃어 젊은 날의 나 놈아!!!"



호주 학교

아들은 6학년 때 호주에 왔다. 학교에 적응을 잘했고, 사춘기가 오면서 엄마에게 가끔 대들긴 했지만 곧 잘 못했다고 사과도 하면서 대체적으로 바르게 잘 자라주었다. 그래도 아빠 입장에서는 5~6개월마다 만나는 아들은 버릇없어 보였고,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들의 행동이나 태도 하나하나에 깃든 서사적, 역사적 맥락을 나는 혼자서 상상해 지어냈다. 대부분의 상상은 부정적이었고, 내 경험치에 근거한 것들이었다. 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아들을 통해서 확인하고 지레 혼을 내는 것이었다. 아들에게 투사된 나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염치없게도 내 뇌리에서 끊임없이 표류하는 생각들, '아들아 너는 나보다는 나아야 할 것 아니냐? 나 때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가?'였다. 지나고 나니 이러한 아빠의 올바르지 못한 태도와 발언들은 아들을 좋지 않은 길로 안내하는 일종의 저주였다.


성적표를 확인해 A학점을 받은 과목을 칭찬하기보다 A를 받지 못한 과목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아들은 잔소리하는 아빠를 마주하기 거북해했다. 장남들의 특성이기도 한 '자존심'이 아빠에게 고분고분도 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아빠는 섭섭해했고, 아들에게 우리가 호주로 이민을 선택한 이유는 '모두 너 때문'이라고 말하는 자고이래로 최악으로 밝혀진 부모의 넋두리를 어린 아들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넋두리는 네이팜탄이 되어 아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초토화시켰다. 아내는 평행선을 달리는 부자를 보며 안타까워했고, 4주가 흐르고 나면 모든 것은 곪아있는 채로 나는 한국으로 떠나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복이 5년 이상 이어지면서 드디어 고름 덩어리는 터지고 말았다. 대학 입시가 끝난 것이다.



조용한 입시

아들은 12학년을 맞이했다. 본인은 의대진학을 원했다. 입시 학기 중에 따로 국가고시처럼 봐야 하는 시험이 있었다.”UMAT; Undergrauate Medicine and Health Science Admission Test 의과대학 입학 허가 테스트”라고 불리는 시험이었다. 호주에서 의학을 전공할 입시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의대 진학이 가능하다. 아들은 이 시험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목표 학과는 의학 분야에서 'Medicine' 바로 아래 단계인 'Physiology'로 변경되었다. 호주에 사는 사람들은 '피지오'라고 하면 그래도 '공부 좀 했구나'하지만,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의과대학이 아닌 다음엔 그게 그거다. 아내와 나는 이번에도 반성해야 했다. 아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할 줄 알았지만 아들은 아들대로 입시 정보와 자세한 절차를 확인하지 못하고 넋 놓고 있었던 것이다. 입시기간 중에라도 아빠가 곁에 있어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늦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아빠인 내가 아들을 믿고 끝까지 아무 잔소리 없이 웃으며 바라만 봐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순간"이지 않은가. 나는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체 점수 'over all 95점'이 넘어야 합격할 수 있었던 '피지오'학과도 떨어지고 차순위로 지원했던 '클리니컬 엑서사이즈 피지올로지'학과에 합격했다. 물론, 이 학과도 93점 이상 받아야 합격할 수 있는 괜찮은 학과라고 했다.

남호주 주립대학교 입학허가서류


부모로서 제대로 서포트를 했더라면 달라졌을 결과였다. 아들은 노력한 것에 비해 적은 소득에도 만족스러워했지만 겉으로만 그래 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합격을 축하하고 격려만 남은 상황에서도 입으로는 아들에게 "합격을 축하한다"라는 말을 시원스럽게 해주지 못했다.


마침 아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가 되는, 나의 부모님과 누이가 조카들과 함께 호주 집에 놀러 와 있는 상황이었다. 합격은 했다지만 자신이 1차로 지원한 학과는 못 가게 돼서 다른 학과에 가게 됐으면, 좀 아쉬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여야 할 텐데, 아들녀석은 사촌들과 웃고 떠들어 대기만 하는 것이었다. 환하게 웃는 아들을 보며 갑자기 신경질이 난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목구멍에서 우스개 소리가 나오느냐며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돈 버는 것만 대수로 여기잖아요. 저한테 해준 것만 말씀하시잖아요. 더 이상 아빠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들에게 한방 맞은 것이다.

"알았다. 이제 곧 스무 살이니까 네가 다 알아서 해. 아빠는 일절 관여 안 할 테니!"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응수했지만 나는 옹졸한 아빠로서의 진면목을 온 가족에게 보이고 말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사촌들,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 시간도 모자란 판에 나는 영화,<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찌질한 주인공, 효섭이 문인으로서 등단에 성공한 선후배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깽판을 치던 것과 같은, 난동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부자의 보이지 않는 노력

돌이켜 생각하면, 아들은 아빠의 조언을 허투로만 넘기지는 않았다. 아들이 9학년 때쯤인가 한 번은 '시간을 내서 운동을 좀 해보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했더니 아들은 내가 없는 사이 체육관에 등록해 열심히 헬스를 해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상체가 역삼각형이 되도록 운동을 하더니 1~2년 뒤에는 헬스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따냈다. 늘 칭찬보다는 뭔가 부족함을 지적하는 아빠를 보면서 아들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유년기 아들에게 못했던 아빠는 다 큰 아들에게도 여전히 악의 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11학년에 취득한 헬스 트레이너 자격증


얼마 후 나는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왜 아빠에게 대면 대면하게 되었는지, 전공은 어떻게 정하게 된 것인지, 여자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일요일에 교회에는 왜 엄마와 함께 가지 않는지, 동생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지 않은데 왜 그런 건지 등등 일방적으로 충고하듯 하던 말버릇을 다 뜯어고치면서 아들이 기분 나쁘지 않은 수준에서 차분하게 차근차근 물었다. 아내가 늘 나에게 조언하듯이 "자식을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말이다.


아들은 운동을 하면서 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의학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아빠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었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비록 의학과는 아니지만 곧 전공하게 될 학과, "피지올로지"도 전도가 유망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와 사촌 누이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밝게 웃고 떠든 것은, 자신이 비록 차순위 학과에 합격했지만 속좁게 상을 찡그리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도 했다. 그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웃고 떠든 것이지 그때도 속마음은 사실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 쪼그라들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평소에 없던 아빠가 방학마다 오는 것은 좋지만, 자신도 학기 중에는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에는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그 기간에 아빠가 와 있으니 자신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해서 늘 긴장하게 된다는 거였다. 아빠는 자신을 편하게 또는 즐겁게 해 주기보다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무언의 압력을 느끼게 하는 눈빛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힘들었다고도 했다. 웃으며 지내기에도 모자란 귀한 시간을 아빠인 내가 가장 많이 훼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와 손잡고 산책하는 아들, 2018년



오이디푸 콤플렉스는 호사가의 미망

친부를 살해하고 자신이 차지한 왕비가 자신의 친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모친이자 아내인 이오 테스카의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이꼴 저꼴 안보고 떠돌이 신세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것이 오이디푸스 신화의 전말이다. 이 비극은 '신탁'이라는 신의 예언으로 촉발된다. 이런 예언은 점쟁이의 말장난일 수도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에 가깝다. 아버지 또한 어린 아들이 자신의 아내를 독차지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질투와 경쟁심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 심리의 한 단면일 뿐이다. '신탁'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만든 신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많은 이들이 속아왔다. 부자지간의 근원적 적대감은 자연스러운 거라는 망상 말이다. 핵심 유전자의 전달자로서 그리고 수혜자로서 부모 자식을 생각한다면 그 사이에 콤플렉스나 증후군 따위의 병리현상은 끼어들 틈이 없다.




대학에 입학한 후 아들은 모든 일을 스스로하고 있다. 학비도 학자금 대출로 마련했고, 나중에 직장에 다니게 되면 자신이 갚으면서 살아가겠다고 한다. 물론, 부모의 지원이 필요한 것은 요청하고, 나도 되도록 아들과 많은 것들을 상의하려고 노력한다. 명령이나 잔소리는 자제한다. 그리고 충고도 자제하게 되었다. 부모와 학교 공부하면서 만난 선생님들, 그리고 성장하면서 만났던 여러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수많은 잔소리와 충고들로 이미 아들은 알만큼 아는 나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잔소리와 충고, 또는 간섭과 배려의 말은, 알고 보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손님처럼 대하라"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여성학자이자 작가인, 박혜란 선생이 한 말이다. 세 명의 아들이 모두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아들이 서너살이던 무렵인 17년 전 그녀가 쓴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을 읽는 것과 읽은 것을 체화해 몸으로 실천하는 일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녀는 최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란 책을 출간했다. 제목만 보면, 이런 책은 그녀가 아니라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이 써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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