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토지(8화)
토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제공한 세상을 경험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다. 기러기가 된 후 시작된 본격적인 책 읽기는 물리적 여행으로 채울 수 없는, 내 안의 심연을 파고드는 여행으로서도 최고의 방법이었다. 내면의 즐거움까지도 담보할 수 있는 밀도 있는 만남이 아니라면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대부분 헛된 일이라는 사실도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된 불편한 진실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이 담고 있는 당시의 시대와 상황을 음미해가며 새롭게 다시 읽고 싶어졌다. 문장과 사연마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며 읽어야 하는 <토지>는 분명 다른 소설과는 구별되는 점이 있다. 역사 다큐멘터리와도 같다고 할까. 사건과 사고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고 등장인물들은 일제강점기 전후로 당시를 살았던 민초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4부로 구성됐고, 총 20권 분량, 읽으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장편소설이다. 쪽수로는 만 페이지에 육박한다. 저자 박경리가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장장 25년 동안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완성한 역작이다.
이야기는 20세기로 접어들기 직전, 한반도에 불어닥친 개혁과 개방이라는 폭풍전야에서 시작된다. 갑오농민 전쟁 직후부터 일제 강점기, 한반도 땅의 고단한 삶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8.15 해방과 동시에 약 5-60년 동안의 여정은 마무리된다.
공식적인 주인공은 서희와 김길상이지만 안방마님 윤 씨와 최치수, 이용과 공월선, 임이네, 이상현과 봉선(기화), 임명희 등의 핵심 인물들이 <토지>의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집중해서 읽다 보면 깨닫게 되는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평사리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최 씨 문중의 마지막 남은 곳간 안주인, 윤 씨는 최 씨 문중에 시집와, 아들 출산 후 청상과부가 된다. 일 년에 몇 번 우관선 사라는 스님이 있는 절, 연곡사에서 지내며 불공을 드리곤 했는데, 그녀가 불공을 드리는 기간, 우관선사의 동생이기도 한, 동학의 접주 김개주가 절에 숨어들어 기거하고 있었다. 윤 씨는 김개주에게 겁탈을 당하게 되고 임신까지 한다. 이미 대여섯 살 된 아들(최치수)이 있고 시부모도 있던 상황, 동네 의원과 몸종 부부, 그리고 우관선사는 위기를 맞은 윤 씨를 위해 모의한다.
장기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다는 의원의 가짜 진찰 결과와 신실했던 몸종들의 권유로, 윤 씨는 사찰에서 몇 달간 정양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절에서 아들을 낳는다. 사생아는 연곡사에서 자라다가 친부 김개주에게 가게 된다. 동학 세력이 수세에 몰리면서 사생아(김환)는 구천이라는 이름으로 최참판댁 머슴살이로 들어오게 되고, 어느 날 구천(김환)은 성이 다른 형, 최치수의 아내이자 서희의 모친이 되는 별당아씨와 함께 지리산으로 야반도주한다. 안타까운 것은 하룻밤의 정사가 낳은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번엔 이용의 사연이다. 공월선이라는 동네 처녀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무당의 딸이었다. 평민이었던 용의 모친은 천민의 딸, 월선을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대적 상황이 그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용이 아내로 맞은 강청댁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이른바, 석녀였다. 용은 의지와는 다르게 혼자 살고 있는 월선을 찾게 되고 월선은 오매불망 용이의 여자가 되길 원한다. 급기야 강청댁은 월선을 동네에서 내쫓고, 여기에 옆집 여자 임이네가 끼어들고, 그야말로 관계는 엉망진창이 된다.
인생에는 의지와 용기, 사랑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숙명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문화와 관습과 규범은 결국 굴레가 되어 인간을 옭아맨다. 문화지체 현상이라는 것이 그래서 태어난 말이다. 문화가 인간의 정서와 생활을 아우르기엔 너무 시대착오적인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도 그렇게 해서 발생한다.
갑오개혁으로 반상 제도가 폐기되면서 양반인 최치수를 제거하는 범죄 계획에 귀녀라는 몸종이 핵심요원으로 등장하게 되는 배경에도 기존 관습과 규범에 대한 강한 부정과 세상에 대한 증오로 꽉 찬 그녀의 내면이 존재한다. 물론, 일은 그녀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둘째, 인간사회가 권선징악을 추구하지만, 모든 일이 사필귀정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간사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조준구는 한양에 살았던 인물인데, 안방마님 윤 씨와 일가가 되는 촌수를 빌미로 평사리의 최참판댁의 객으로 기거하게 된다. 일제강점기가 되는 염량세태의 시류를 타고 조준구는 일본군의 협조를 얻어 주인이라고는 어린 소녀, 서희만 남은 최참판댁과 토지를 가로챈다.
사고무친이지만 머슴들, 특히 길상과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할머니(윤 씨 마님)가 물려준 금궤를 밑천 삼아 서희는 간도행을 결행한다. 그녀는 곡물과 탄광개발과 같이 당시로서는 전략과 정치세력과 같은 배후의 지원이 필요한 사업에 수완을 발휘해 크게 성공한다. 마침내 한양의 인맥을 동원하여 조준구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숨이 멎는 순간까지 조준구는 결코 뉘우치지 않는다. 병신이라며 천덕꾸러기 취급했던 자신의 친아들, 꼽추 병수에게 조준구는 빈손으로 찾아가서 뻔뻔하게도 벽에 똥칠하며 죽을 때까지 아들 부부에게 악다구니를 부리다가 눈을 부릅뜨고 죽는다.
사악한 인간, 김거복(김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 김평산의 아들, 거복은 어려서부터 못된 짓만 일삼는다. 일제강점기엔 일본 순사가 되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군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그 또한 머리가 허옇게 세도록 그 위에 벼락이 떨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셋째, 인생에 결론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삶에서는 기승전결과 같은 서사의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허무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엔 그저 삶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평사리 땅의 주인, 최치수도 허무하게 갔고 그를 죽인 김평산과 칠성이, 귀녀도 형장의 이슬로 허망하게 사라진다. 김평산의 아내는 목을 맸고, 귀녀의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던 강포 수도 아이가 장성하자 아이의 과거를 영원히 묻어두기 위해 산속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 용이가 사랑했던 월선도 평생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암 선고를 받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토지>에서 2세대 인물들, 즉 성장한 서희와 길상, 용의 아들 홍이, 한양에서 기생이 된 봉순(기화), 최치수 고향 친구 이동재의 아들, 상현이 일제강점기를 제각각의 방식으로 살아내며 삶의 과정을 채워간다. 역시 결론은 없다. 과정만 있을 뿐이다. 모든 인생은 과정을 겪으며 그 과정 속에서 각자의 삶을 처연하게 바라 볼뿐이다.
상현은 서희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하고, 홍이는 아내 보연을 두고 첫사랑 장이와 바람을 피우고 응징도 당한다. 보연은 사랑으로 남편을 지킨다. 친일파, 조용하와 결혼한 임명희는 목숨을 걸고 이혼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상현의 딸을 후원하는 일에 만족한다. 삶은 계속된다.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개인들 삶에 희로애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은 일제의 패망 선언과 함께 끝나지만 친일잔재는 자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엄존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넷째, 그럼에도 소설, <토지>를 읽다 보면 삶을 진지하게 대해야 하는 이유가 존재한다는 외침이 들린다.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우리 민족이 모두 독립군과 친일파로 양분된 것은 아니었다. 독립군과 친일파들처럼 확실하게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총력을 다해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민초들은 발등의 불을 끄며 살았다.
땅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고 이웃과 잘 지내다 보면 그들이 속해 있던 커뮤니티는 결국 공동체가 가야 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김평산의 둘째 아들, 한복은 부친과 형(거복)의 죄과를 조금이라도 씻어내기 위해 독립자금 운반책이 되는 위험을 감수했고, 용의 아들 홍이도 사업을 하면서 독립자금을 마련했으며, 두만 댁은 남편과 큰아들의 부도덕에 염치를 느끼며 조금이라도 이웃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만이라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한양서 기생이 된 기화(봉선)도 친일파들의 동정을 파악해 독립군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명희 또한 이혼 위자료 대부분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희사한다.
도리와 염치를 아는 장삼이사의 이름 없는 민초들이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기게 되는 이유다.
토지의 주인
평사리 토지의 주인은 최참판 댁이었다가, 조준구가 접수했다. 다시 땅과 집문서를 되찾은 서희가 주인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나서 해방이 된다. 조국의 해방과 평사리 토지에 복귀하는 서희는 새로운 희망의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악양면 평사리의 넓은 평원은 소작을 부치고 있던 농 부이 진정한 주인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그런 사실을 우회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최참판댁의 윤 씨나 마름들이 소작을 부치고 있는 농부들의 땅에 대한 헌신을 모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농부들이 수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마을 잔치를 하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그래야 세상은 마땅히 아무 문제없이 흐르는 물에는 순서가 없듯이 그렇게 순리적으로 돌아간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토지의 주인은 땅문서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유세를 떨지도 농부들을 업신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마름의 제안에 따라 마을 사람들 하나하나의 살림이 부족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사람들의 대소사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반상의 구분은 국가의 제도였다. 소설은 이 제도가 바뀐 직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어도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은 벌어진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 박경리가 심혈을 기울여 세밀하고도 내밀한 민초들의 삶에 대한 묘사를 게을리하지 않은 데에는 제도와 관계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우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경고를 전달하고자 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토지>의 유명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평사리 사람들이 서희를 따라 간도에서 피난살이를 하던 시절, 임이네는 월선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손을 거들고 살았다. 매일 수입 중 상당 부분을 빼돌렸다. 국밥은 불티나게 팔렸지만 재료값도 남지 않는 상황이 될 정도로 임이네의 횡포는 자심했다. 어느 날 밤, 식당 건물에 불이 난다. 어린 아들 홍이가 보이지 않자 용이와 월선은 걱정을 하고 있는 상황, 임이네가 불구덩이 속에서 베개를 안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용이는 "이깟 베개가 뭐꼬?" 하며 불구덩이에 베개를 던져버린다. 임이네는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베갯속에는 그동안 그녀가 월선의 식당에서 빼돌렸던 현금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호주
2019년도에는 한국에서 <토지>를 꼼꼼히 읽으면서 여가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해 여름, 호주에 가서는 가족이 골드코스트로 여행을 갔다. 되도록이면 아이들이 방학을 맞이할 때마다 매년 호주의 주요 지역으로 여행을 했다. 아이들은 거기가 거기라며 애들레이드 외 호주의 다른 지역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가족이 같이 모여서 이동하고 숙박을 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 특별히 장소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지역이 자연친화적인 호주라는 나라의 특성상 정말 거기가 거기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도 티브이나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고, 비치도 남호주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멜버른도 그냥 북적이는 도시 그대로였고, 예수의 12 사도를 상징하는 섬들을 구경할 수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도 그냥 해안의 도로였으며, 캥거루 아일랜드야 말로 차와 함께 배를 타고 들어가는 정도의 여행경로 상 신선함을 제외하면 SoSo쏘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서사를 적어 넣으면 장면과 풍경은 달라진다. 오페라하우스에 갔을 때 외관에서 느꼈던 평범함과는 달리, 내부에서 하는 연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서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가 원래의 계획보다 수십 년 더 걸린 현대 공학의 결정체라는 사실도 건물을 새롭게 보게 했다. 멜버른을 가다가 만난 200킬로미터가 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전쟁 직후 돌아온 병사들의 일자리를 위해 공사를 벌인 결과 만들어졌다는 후일담을 알게 됐다.
캥거루 아일랜드는 섬에 캥거루가 많아서 생긴 별명이 아니었다. 섬의 모양이 캥거루를 닮았던 거였다. 그리고 캥거루 아일랜드에는 수억 년 전 화석이 있어서 고고학자들이 자주 찾는 섬이기도 하다.
골드 코스트는 퀸즐랜드 주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해서 찾은 곳이다. 호주는 6개 주(state)가 있다. 시드니는 뉴사우스 웨일스 주에 속해 있고, 멜버른은 빅토리아주에 속해 있으며, 헬리코 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한 베리 마샬 박사가 사는 퍼스는 서호주 주에 속해 있다. 북쪽의 사막기후를 자랑하는 다윈이 속해 있는 (준) 주는 노던 테리토리다.
<토지>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간도에 피난을 가서 살던 임이네는 월선이 자비로 개업한 식당에서 일을 해주었는데 매일 수입의 상당 부분을 빼돌렸다. 국밥은 불티나게 팔리는데 남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욕심은 자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식당에 불이 난다. 어린 아들 홍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하는 용이와 월선이 치솟는 불길을 지켜보며 맘을 졸이는 가운데, 임이네는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서 베개를 끌어안고 나온다. 용이는 "이깟 베개가 뭐꼬?" 하면서 베개를 다시 불구덩이에 던져버린다. 베개는 불속에서 재가 되었다. 임이네는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다. 베갯속에는 그동안 빼돌렸던 현찰이 빼곡히 들어있었던 것이다. 사안에 대한 경중 완급이 뒤바뀌면 이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