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와 참선의 차이

2021년 9월 재회(10화)

by 정태산이높다하되

영주권이 말소되다

2010년 12월 17일 호주행을 시도했지만 좌절됐다. 나의 5년짜리 거주 비자가 만료된 것이 이유였다. 5년을 거주하면서 그 기간 중 40퍼센트 이상 호주에 체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자가 아예 말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리턴 비자라고 해서 1년 체류할 수 있는 비자를 신청해야 했다. 한심했던 것은 비자가 만료된 사실도 모른 채 짐을 바리바리 싸서 출발 당일 공항까지 갔다는 것이다. 항공사 직원이 호주 영사관에 확인한 결과 나는 입국 제한 대상자였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에서는 시민권자와 영주비자 소지자만 입국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황망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공항에서 사무실로 되돌아가는 길 위에서,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한 대목이 생각났다. 1884년에 출간된 J.K. 위스망스라는 작가의 소설, <거꾸로>에 등장하는 인물, 파리에 사는 데제쌩트 백작 이야기다. 그는 디킨스의 소설을 읽다가 영국의 런던 여행을 계획한다. 짐가방 여러 개에 꼼꼼하게 필요한 물건을 챙겨 넣으라고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마차를 대기시킨다. 기차역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는 문득 이런 생각한다.

J.K. 위스망스, 위키백과


'짐을 부려서 짐칸에 싣고, 나는 북적거리는 객차로 들어가 자리에 앉겠지, 가는 동안 한나절은 주위 사람들의 시큼한 땀냄새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음으로 피곤하겠지, 그렇게 힘겹게 도착해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런던의 이런저런 곳을 돌아다니다가 피곤에 절어 너저분한 숙소에 들어가겠지. 그렇다면 내가 이미 책을 읽어 모두 알게 된 그곳에 뭐하러 불편과 피로를 무릅쓰고 가야 한단 말인가?' 생각 끝에 데제쌩트 백작은 마차를 돌려 집으로 되돌아간다. 위키백과에서 위스망스의 사진을 찾아보니 야무진 표정과 잘 다듬은 수염의 모양에서 혹시 소설, <거꾸로>의 데제쌩트 백작은 이 저자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데제쌩트 백작과 나는 여행의 이유가 전혀 달랐다. 그는 여행을 그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보기 위해 떠나려고 했던 것이고 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나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계획을 취소하고 돌아온 것이지만 나는 강제로 출국을 제지당한 것이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무심히 그 장면이 떠올랐던 것은, 가서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먹을 용기라면과 즉석밥, 주전부리에다가 읽을 책들, 가족들에게 전달할 옷가지들과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잔뜩 담은, 커다란 캐리어를 두 개나 끌고 그 위에 박스까지 한 덩이 얹은 상태에서 백팩까지 등에 짊어지고 이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짐을 그대로 끌고 얹고 들고 돌아오는 길에서 데제쌩트 백작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그 비슷했을 모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에 없던 경험이었고, 백삼사십 년 전 어느 신사가 나처럼 출국하려다가 그대로 돌아왔다는 내용에 실소했던 기억이 저절로 소환된 것 같다. 사족이지만 그 옛날에는 하인들을 대신 여행을 보냈다고 한다. 여행을 하고 돌아온 하인이 주인에게 여행담을 들려줬다는 거다. 과거 귀족들의 어리석음은 요즘의 부호들 못지않았던 것 같다. 떠난다는 것은 일말의 기대와 희망과 같은 들뜬 기분을 고조시킨다. 여행이 무산되자 나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평소보다 침잠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날 저녁부터 나는, 오래전 구입해 놓고 엄두를 내지 않고 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펼쳐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우울한 내용의 책을 펼쳐 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때도 있다. 19세기 러시아의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가 펼쳐질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으로도 짐작된다. 가족, 사랑, 범죄, 패륜, 박애, 종교, 역사, 사법제도 등등 다루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로 소설은 방대한 주제를 만연체로 유려하게 늘어놓는다.


일단, 이 책은 '친부 살해'라는 패륜적이고도 상당히 자극적인 범죄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들 3형제를 둔 아비,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가 어느 날 살해된 채 발견된다. 파블로비치는 체면이나 양심, 염치 따위라고는 일절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다. 술과 여자, 그리고 돈에 집착하는데, 아주 대놓고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심지어 자식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집착을 실행한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는 인물이다. 아무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는 어려운 상황, 하지만 살인, 그것도 존속살해는 금기 아닌가. 세인의 거센 비난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알렉산드르 2세, 1881년 3월 1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 궁전에서 암살당한다. 위키백과


1861년 농노해방을 공포했던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될 뻔한 위기를 겪고 보수로 돌아서면서 수차례 테러 위험에 노출됐다고 한다. '친부 살해'라고 하는 테마는 바로 이런 상황을 빗댄 도스토예프스키의 전략적 구성의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옮긴 이, 김연경 교수의 해설을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이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의 갈래를 대변하는 집단의 은유일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을 모르더라도, 소설은 아주 재미있다. 매우 직설적으로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욕망을 충실히 포착해 독자들을 당황하게도 흥미롭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애들레이드, 1년 반 만에 다시 찾다

보름쯤 이 책을 들고 씨름했더니 우울감은 사라졌다. 애들레이드의 가족 구성원들은 화상통화로 문자로 이메일로 아빠를 위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4단계에서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5월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노쇼 No Show'가 발생하면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대기 신청을 해두었다가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11주 만에 2차 접종을 완료하고 8월 29일 애들레이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호텔에서 2주 동안 격리를 당했다. 격리하는 동안 총 4회, 그리고 격리가 끝나고서도 1회,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코 안의 핏줄이 약한 탓에 코피가 자주 났다. 한국에서 섬세한 손길로 테스트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호주 사람들의 엉성한(clumsy) 손놀림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공되는 하루 세끼 식사도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루 걸러 라면과 햇반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매일 오전, 의사와 간호사, 경찰, 카운슬러 등이 격리자에게 전화를 걸어 몸과 정신 상태를 체크했다. 귀찮기는 했지만 혹시나 있을 격리자의 고충을 파악하고자 하는 거라고 했다.

격리 중 호텔 방구석의 모습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고립도 한 번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기러기가 된 후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나로서는 사실 별 걱정이 없었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까지 했으니 이만한 격리쯤 견딜만하겠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일률적으로 호주달러 3천 불을 내야 하는 게 아까웠고, 식사 메뉴가 제공자들 마음대로라는 게 거슬렸을 뿐이었다.


호텔에 혼자 있으면서 글을 쓸 계획을 하게 됐다.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인 브런치를 알게 됐고, 이곳에 글을 쓰기 위해 기획을 시작했다.

이민을 하게 된 사연,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느꼈던 외로움과 해방감 같은 이율배반적인 감정들, 아들과의 갈등과 회복, 늦둥이 딸에 대한 사랑,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게 된 아내에 대한 존경과 감사, 사업을 하게 된 계기와 나 나름의 회사 운영 방식과 같은 나만의 소소한 일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아무도 관심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나의 내면을 다지는 계기가 되리라 믿었다.



생각보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 옛날 저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말을 몰고 달리다가 갑자기 서서 한참 동안을 머무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들이 "안 가고 서서 뭐 하는 거냐"라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디언은 "내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게는 격리기간이 바로 인디언이 말한 '내 영혼이 그간 나의 행위를 잘 따라오고 있었는지' 반추해보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는, 17만 년 밖에 안 된 어린 철부지 사피엔스들이 45억 살 된 지구에 가한 횡포에, 지구가 반응을 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은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몇 년을 주기로 변태를 거듭하며 지역적으로 전염병을 일으키면서 인간에게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지구를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개발과 착취를 강행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인간들에게 너무 달리지 말고 이제 가만히 앉아서 그동안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라는 자연의 권고다. '과연 현재 인간의 라이프 스타일은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이나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라는 것이다.


재회

봄방학을. 맞은. 딸과 찾은 음악회,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격리가 끝나고 집을 찾은 시각은 오전 9시경이었다. 이미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아내가 나를 맞이했다. 격리 기간 매일 화상통화를 했기 때문에 특별한 얘깃거리가 더 이상 없을 줄 았았지만 막상 만나 대화를 나누니 일 년 반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느껴졌다. 마당의 잔디와 집을 둘러싸고 있는 펜스 트리(fence tree)들이 내 키만큼 자라 있었고, 가지를 쳐서 낮게 만들어 두었던 복숭아나무도 몰라보게 다시 자라 있었다. 뒷 뜰 데크에 앉아 햇볕을 쬐며 우리는 마치 어제 보고 다시 보는 듯 태연하게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주 보는지 1년 반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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