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캣츠 앤 독스(6화)
So Sorry, Aurum!!!
애들레이드에 있는 가족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작은 개를 추천했다. 포멜라이온이나 시추, 또는 몰티즈나 푸들처럼 다루기 쉬운 소형견을 입양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아내와 아이들은 집도 넓은데 주변의 다른 가정들처럼 큰 개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같이 지낼 수 없어서 발생하는 답답함은 이럴 때 배가 된다. 아내와 아이들은 겁도 없이 골든 레트리버 새끼를 입양했다. 처음엔 여느 강아지들처럼 작고 귀여운 새끼였다. 모두들 좋아했다. 아들은 개를 황금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롬(Aurum)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나에게 기별했다.
입양한 후 5개월 만에 내가 집에 갔을 때 이미 아롬은 강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미 성견의 모습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이벤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입양한 후 반년 가까이 카운슬(council, 우리나라의 주민센터)에 등록을 하지 않아서 매달 날아든 벌금 고지서에는 과징금에 과징금이 더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지서에 적힌 금액은 만불을 초과하고 있었다. 뭐에 씌었었던지 아내는 그 고지서를 보험광고나 부동산 광고지 나부랭이와 같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큰 돈을 그냥 다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도착한 날 나와 함께 집에 날아든, 자동차 신호위반 범칙금 고지서(AUD500달러)를 확인한 직후였기 때문에 상심은 더욱 컸다. 일단,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하늘을 한번 보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나는 아내와 함께 카운슬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내가 영어가 서툴러서 모든 서류와 안내문 같은 경우, 늘 한국에서 지내는 나와 실시간으로 공유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 만큼은 어쩐 일인지 아내가 누락시켰다. 그러니 사정을 좀 봐달라.'라고 했다. 카운슬 직원은 냉정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로 서류를 한 장 주면서 정식으로 카운슬에다가 민원을 제기하라고 조언했다.
'아! 공무원은 어느 나라나 다 같구나. 결국엔 원칙대로 내야 하나보다.' 내심 자포자기하게 됐다. 그래도 나는 정성스럽게 볼펜으로 꾹꾹 눌러서 사연을 적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은 A4지 한 장을 꽉 채울 만큼 만연체로 늘어졌고, 사연은 구구절절했다.
"호주가 좋아서 이민을 결정했고, 나는 한국과 애들레이드를 일 년에 두 번씩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며, 아내는 2년 동안 일을 했고, 시민권자도 됐으며, 집도 사서 매년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내고 있다. 그리고 아빠가 없는 집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개를 입양했는데 등록하는 절차를 몰랐다. 이번 한 번만 사정을 봐달라. 앞으로 호주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잘 살아보겠다."는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굳이 해가며 공무원이 제공한 민원서류에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내용으로 빼곡히 채웠다.
읍소 전략은 통했다. 민원이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벌금은 감면해주겠다는 레터와 함께 개(아롬)를 등록하라는 안내문이 동봉됐다. 사실,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 없으니 과도한 벌금은 부당한 것이 맞지만 벌금을 깎아준 것도 아니고 아예 취소해 주다니 나는 이들의 합리를 떠난 관대한 행정절차에 대단히 만족했다. 이 일을 겪으면서 호주 공무원들이, 그리고 호주 사회가 매우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내용은 4~5년쯤 전 사건에 대한 스토리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요즘 우리나라 공무원들도 친절하고 대단히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롬이는 국가에 등록됐고 목 뒷덜미에는 등록정보가 담긴 칩도 삽입됐다. 호주에서 고양이와 달리 개는 법적으로 등록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동안, 매년 AUD70 달러 정도를 등록비로 카운슬에 지불한다. 서구사회에서 개는 가족의 일원이다. 그렇게 호주에서 나의 첫 일정은 아롬을 정식 가족 구성원으로 맞이하는 절차를 밟는 일이었다. 내가 있는 동안, 동물병원에서 추천하는 중성화 수술도 했다.
한 달 만에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몇 달 만에 아내와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아롬이가 너무 커버렸다. 11학년이 된 아들은 아롬이를 데리고 산책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지만 학교 공부에 바쁜 시기라 시간 내기가 어려웠고, 아내와 딸은 아롬이한테 끌려다닐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아롬은 에너지가 넘쳐 집안에만 있을 수가 없는 개였다.
그러던 어느날 산책 중에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아내가 잠깐 방심한 틈에 아롬이가 찻길로 뛰어들려고 힘을 썼고, 자신이 목줄을 놓게 되면 아롬이가 차에 치일까 봐서 놓지 못하던 딸아이가 넘어져 아롬이에게 질질 끌려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내도 속수무책이었다고 했다. 이때 딸이 얼굴까지 다치게 되었다.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아롬이를 다른 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몸집은 컸지만 어려서 천방지축인 아롬이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2016~17년에 걸쳐 일 년이 넘도록 함께 했던 아롬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야 했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중대한 실수였다. 서로에게 헤어지는 고통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아들과 딸은 한동안 너무 힘들어했다. 아롬이도 그랬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동물이라도 같이 지내다 보면 우리와 하나 다를 바 없는 소중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소통은 몸짓과 눈빛으로 하는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아롬이의 눈빛과 '꾸우웅~'하면서 나와 가족들에게 비벼대던 몸짓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간디가 그랬다던가, "그 사회의 복지 수준은 사람들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우리 가족은 형편없는 매너를 반성해야 했다. 한 영혼에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짓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롬이를 입양한 중년 부부는 매우 젠틀해 보였다. 아이없이 사는 딩크(DINK)족이라고 했다. 애지중지 사랑받으며 우리집에 있을 때보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는다. 잘 지내고 있지 아롬?
딸기, 당신의 반려동물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고양이! 더이상 실패는 없다. 입양 전 고양이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여러 권의 책을 가져가서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고양이는 손이 별로 가지 않는 반려동물이다. 고양이 관련 서적을 보니, 산책을 시킬 필요도 없고 하루에 15분 정도만 놀아주면 된다는 정보가 맘에 쏙 들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자고 졸라대면서 자기들이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에 대해서 나몰라로 일관한다. 똥 치우고 먹이 주고 씻기고 병원 데리고 다니고 하는 모든 뒤치다꺼리는 엄마의 몫이다. 작은 강아지보다는 키우기 쉬운 고양이가 선택된 이유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애들레이드 외곽에 있는 농장을 찾아갔다. 우리는 말과 양, 개와 고양이,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북적대는 농장을 멀리서 보기만 했지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 농장에서 막 태어난 렉돌(rag doll)이라는 품종의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렉돌은 사람을 잘 따르고 사교성이 좋아 개냥이로 통한다는 설명을 책과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이제 2주밖에 안된 새끼들 중에서 한 마리를 농장주가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기본 접종이 모두 끝나는 4주 후에 데리러 가기로 농장주와 합의하고 계약금을 지불했다. 이번엔 딸이 새 식구가 될 친구의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딸기로 하자는 거였다. 영어 이름으로는 Berry가 되었다.
딸기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하나 우리 가족에게 선사했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7개월쯤 됐을 무렵, 그러니까 2017년 말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호주의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휴가를 맞은 기간, 마침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와 계셨다. 대가족이 모두 꽃게잡이 하러 바닷가까지 다녀온 날이었다. 잡아온 게를 옮기고, 뜰 채와 젖은 수영복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시간, 집 뒤 데크에서 딸기가 앞마당의 체리나무(lilly pilly tree)에서 날아들었을 게 분명한 자그마한 꿀벌 한 마리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벌은 힘없이 다리만 버둥거리고 있었고, 딸기가 앞발로 벌을 이리저리 차면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무심히 지나쳤다.
거실에 앉아서 잠깐 쉬고 있는 틈에 별안간 소파 뒤에서 괴성이 들렸다. 마치 들짐승이 포효하는 듯 경천동지 할 만한 소음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가 뒷발로 서서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소리를 낸 장본인은 딸기였다. '이 녀석이 돌았나?'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주둥이가 부풀어 있었고, 입안에서 흘러나온 거품이 허옇게 입 주변에 퍼져있었다.
"여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얘가 왜 이래?"나는 소리를 질렀고, 아내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동시에 뒤뜰에서 잠깐 일별 한 장면이 소환됐다. '이 녀석 벌에 쏘였구나!!!'
단골 동물병원에 전화했더니 휴가 중이었다. 연휴였기 때문에 동네에 동물병원 하나만 응급센터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화를 해서 고양이의 상태에 대해 설명했더니 안내원은 물었다.
"고양이 몇 살인가요?",
"7개월쯤 됐어요."
"죽지는 않겠군요. 너무 어린 친구면 쇼크가 커서 즉사할 수도 있었겠는데요?"
"그럼, 이제 괜찮을까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접수비는 400불입니다."
병원 문턱을 넘는데만 400불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딸기가 괜찮을 듯하다고 말했고,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 데려가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 밤중에 가봐야 접수비에 입원비에 쓸데없는 비용이 낭비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아차! 비용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머리가 굵은 아들이 즉각 반발했다. 돈 때문에 딸기가 병원에 못 가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였다. "나나 바니(딸 이름)가 아파도 그러실 거예요?"라며 따졌다.
그새 아들은 수의학을 전공하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딸기의 증상에 대해 상의했고, 그 수의학 전공 학생은 바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것이었다. 아들과 나는 설전을 벌였다. 그사이, 딸기는 좀 진정되었고, 물을 먹었으며 제대로 걷기 시작했다. 내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자 봐라, 이렇게 멀쩡한데 굳이 병원에 가서 돈 쓰고 또, 딸기도 우리랑 떨어져서 불안할 거 아니니? 그렇게 고생시킬 일이 아닐 듯 하네"라고 말하며 아들을 설득하는 데 거의 성공했다고 안심할 무렵, 딸기는 갑자기 거실 바닥에 사지를 늘어뜨리면서 먹은 물과 우유를 토하는 것이었다. 이놈의 고양이가 정말이지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응급실로 데리고 가야했다. 병원 문턱만 넘었을 뿐인데, 우리는 일단, 접수비부터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건장한 수의사가 우리 앞에 나타나, 딸기를 보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구나 "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나는 수의사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옛날 유머 일번지 같은 프로그램에서 봤던 콩트가 생각났다. 환자를 본 의사가 속으로 생각하는 장면에서 방백이 울려 퍼진다. '아, 조금만 늦었으면 그냥 나을 뻔했잖아!!!'
병원에 도착한 딸기는 다시 멀쩡한 듯 보였다. 제 발로 걸어서 돌아다니고 물도 먹었다. 그러나 수의사는 입원을 권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딸기를 맡기고 돌아와야 했다. 다음날 딸기는 건강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너무 돈돈 하는 것 같아서 병원을 나서면서 지불한 천불 가까운 금액이 구체적으로 얼마였는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딸기가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된거니까.
동물병원 응급실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캘리그래피로 대문짝 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Your Pet is Our Fam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