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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함부로 예단하지 말라

<희랍어 시간> 리뷰2

by 정태산이높다하되

부친의 지사 발령으로 함께 독일행을 하게 된 15세의 남자는 독일 생활 일년 남짓만에 신체적 위기를 발견한다.


독일의사의 진단으로는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편, 독일 의사에게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목공일을 하게 됐고,

환자로 병원을 찾던 남자는, 목공일을 하는 소녀의 일상을 지켜보며 감정을 키운다.


가까워졌고, 둘은 사랑에 빠졌다.

어린 나이지만 서로의 장애를 아는 두 사람, 그런데 그 장애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올 법한 비극적 상황을 초래할 예정이라고 느끼는 쪽은, 한국에서 온 눈이 잘 안 보이게 될 남자였다.


악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인간이 있다.

신이 았어, 이를 알고 보고도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한 것일테고, 해결할 수 있는데도 보고만 있다면 선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의 이런 말에 여자는 그런 논리따위는 집어치우는 편이 낫다고….

슬퍼하는 신을 생각한다고…..


남자는 여자에게 특수학교에서 배운 독순술을 이용해 자신에게 무슨 말이든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자신이 보지 못하게 되면 서로 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으니 대비하자는 의미를 내포한 요구였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라고 생각했던 것은 남자의 오산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단칼에 내친다.

얼굴을 눈물로 적신 채 여자는 오랜 시간 목공으로 단련된 손으로, 사죄하며 매달리는 남자를 후려쳤고,


떨어져 나가지 않는 남자를 목공소에 뒹굴던 각구목으로 내리쳐 기절까지 시킨다.


혹독한 절교의 과정을 거쳐 둘은 헤어진다.


서른 한살에 홀로 귀국해 희랍어 강의를 하게 된 남자는

수강생 중 말을 하지 않는 여성을 발견하고 관심을 갖는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걸까.


헤어진 여성을 기억하며 조심하는 남자.

시력이 떨어진다.

어스름해지면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강의하고 산책하며 가까스로 삶을 홀로 꾸려간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는 강의하는 건물에서 여자와 엇갈리고 박새 한마리 때문에

안경을 떨어뜨리고 주저 앉게 된다.

남자는 외친다.


그때 말 안하는 수강생, 여자가 나타나 남자를 구한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손에 글을 써서 의사를 알리고 청한다.


그제서야 독자인 나는, 독일 여자를 이해하게 됐다.


독일에서 목공일을 하던,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동양의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이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함께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처럼 삶에 희망이 생겼다.

태양을 함께 올려다 보고싶을 정도로…


한국에서 온 남자는 미래를 불행하게 그렸고

독일에서 사는 여자는 미래를 행복하게 그렸다.


남자는 현실적이었고, 여자는 현실 너머의 이상을 꿈꿨다.

남자는 미래를 수학적으로 계산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안보이게 되면 말소리만을 낼 수밖에 없고 여자는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니 남자에게 표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자신들의 사랑은 서로를 힘들게 하는 함정이 될 밖에....


그러나 여자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사랑할 방법만 생각했던 것이다.


삶은 유지되고 어쩌면 더욱 풍성해 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경험을 즐길 준비를 하던 중이었으니 말이다.


둘의 세계관의 교집합은 생각보다 작아서 오랜 시간 향유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여자는!


미래는 오늘이 쌓여 만들어진다.


사랑의 시작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가치와 무게로 다가왔다. 서로의 장애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느냐 서로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 민폐일뿐이라고 보느냐.


남자는 결국, 전혀 다른 곳에서 실어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의 도움을 받게 된다.


남자는 위기에서 탈출하면서도 안도와 함께 하릴없이 썰물처럼 밀려드는 소슬한 허망함에 휩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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