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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Nov 04. 2021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4부

오심

4부에서는 드미트리가 육친 파블로비치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 수감되고, 재판을 받는다. 일단, 장남 드미트리는 자신의 부친 파블로비치를 죽이지 않았다. 드미트리 본인과 동생 알렉셰이와 독자들만 아는 사실이다. 그가 부친을 죽였다는 뉴스특보에 러시아 전체는 경악한다.


언론

같은 수도사 신분이었던 라키친은 <풍문>이라는 페테르부르크 신문에 '카라마조프 소송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다. 우선 라키친이라는 인물됨을 알아보자. 그는 드미트리가 사랑하게 된 그루셴카의 사촌이다. 수도사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알렉셰이를 그루셴카의 집에 데려가는 대가로 그녀에게 25 루블을 받기도 하고 또 수시로 얼마씩 그녀에게 동냥을 구하는 파렴치한 위인이다.


호흘라코바 부인은 파블로비치가 살고 있고, 삼 형제가 모여든 소설 속 배경이 되는 마을, '스코토프리고니예프'에 사는 미망인으로서 알렉셰이를 사랑하게 된 리자의 모친이기도 한데, 호기심 많고 재력도 있는 아직 젊은 여성이다. 마치 살롱처럼 호흘라코바의 집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카체리나와 그루셴카도 이 집에서 만났고, 이반과 알렉셰이도 이 여성의 집을 수시로 방문한다. 호사가인 호흘라코바는 기꺼이 자신의 집을 만남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이다.


언론인이 되고 싶었던 라키친은 호흘라코바에 접근해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조시마 장로의 사망을 포함한 마을의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그녀에게  나르며 환심을 산다.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남자의 치기에 넘어갈 호흘라코바가 아니다.   


라키친은 페테르부르크로 떠나 기자가 된다. 그래서 살인누명을  드미트리를 최대한 악의적으로 묘사하며 그가 저지른 애정행각의 대상  하나로 호흘라코바를 끼워 넣으며 그녀에게도 복수한다.


"재판을 받게 된 범죄자가 퇴역한 육군 대위이며 뻔뻔스러운 타입의 게으름뱅이에다 농노이며, 계속하여 애정행각을 벌이고 특히 '외로움에 젖어 권태로워하는 부인들'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중 한 과부는 그에게 홀딱 반한 나머지 범죄 발생 겨우 두 시간 전에 자기와 함께 금광을 찾아 떠나자며 3천 루블을 제안했다는 것이다.(3권 135쪽)"라고 기사를 쓴다.


드미트리가 호흘라코바를 찾은 것은 사실이다. 그녀에게  3 루블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호흘라코바가 그에게  대신 금광사업을 시작해보는 것이 어떠냐며 권한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 과장에서 둘 사이에 남녀간의 연정은 개입되지 않는다.


그러나 라키친의 기사는 사실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왜곡한 것이다. 기사만 보면, 드미트리와 호흘라코바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아예    모르는 천치로 여겨진다. 2000  카이사르가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고 했다는데  인간은 지금도  인간인 것이다.


재판

러시아는 1864, 배심원제도와 공개재판 제도를 확립했다. 소송전에서 승리하려면 검사와 변호사는 일장연설에 능해야 했다. 설득력과 호소력을 겸비해야 방청객과 배심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었으니 말이다. 드미트리를 둘러싼 모든 정황과 증거는 검사 이폴리트 키릴로비치에게 유리했다. 피살된 파블로비치 방바닥에 뒹굴던 3 루블을 싸고 있던 봉투, 만나는 사람마다 부친을 죽여버리겠다고 드미트리 본인 입으로 떠들어댄 사실, 그루셴카의  마당에서 가져간 절구공이로 내리친 사실, 그리고리, 카체리나, 그리고 그루셴카의 증언들  하나하나가 드미트리의 유죄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드미트리가 카체리나에게 보낸 편지, 3권 230쪽

그러나 변호사 페츄코비치의 연설이 시작되면서 청중과 배심원들은 동요한다. 그가 보기엔 심리학자이기도  검사 키릴로비치의 논고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에게 말하자면 다소간의 예술적 유희, 예술적 창작이 생겨날 경우, 특히 우리의 능력에 천부적으로 풍부한 심리적 재능이 부여된 상태에서 말하자면 소설 창작과 같은 욕구가 생겨날 경우입니다.(3권, 457쪽)"


증거와 증거 사이에 혹은 증언과 증언 사이에 발생하는 빈틈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피고를 대하는 방식에 결정적 차이를 가져올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파블로비치의 방바닥에 나둥굴었던 돈봉투, 그리고리의 머리를 내리쳤던 절구공이, 홧김에 떠들어대던 말과 글은 모두 보기에 따라 드미트리를 변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를 둘어싼 모든 정황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읽힐  있다는 것이다.


이반과 스메르쟈코프

스메르쟈코프는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저주했다. 심지어 자신의 근본이 마을의 정신 나간 여자로부터 시작됐다는, 영원히 바꿀  없는 사실과 그런 여자를 겁탈해 임신시킨 유전적 혈연관계의 파블로비치를 증오하고 경멸했다. 그런 스메르쟈코프가 보기에 파블로비치와 가장 닮은 인물은 뜻밖에도 이반이었다.


이반은 스메르쟈코프를 세 번에 걸쳐 방문한다. 스메르쟈코프는 드미트리가 파블로비치를 급습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마리의 독사가 다른 한 마리의 독사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영리한 사람과는 얘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롭다."라는 그가 한 또 다른 이 말은 이반과의 자신이 대화를 나눈 직후에 한 말이다.


그런데 다시 돌이켜보면 '독사' 두 마리는 결국, 스메르쟈코프와 이반이었다. 스메르쟈코프가 이반에게 언뜻 비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영리한 사람' 운운한 것은 일종의 암시이자 조롱이기도했던 것이다.


이반은 형의 여자, 카체리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알렉셰이의 여자, 리자에게도 마수를 뻗친다. 학식과 지적 능력이 뛰어나 모두의 존경을 받게 되는 이반은 세계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결연히 떨쳐 일어나는 무정부주의자인  하지만 결국은 인격파탄자에 철저한 이기주의자였을지도 모른다. 이반이 부친 파블로비치보다 더욱 유해한 인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꿰뚫어  사람은 모두의 눈을 피해 파블로비치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였다. 드미트리의 변호인 페츄코비치도 스메르쟈코프를 지적 능력의 맹아를 보이는 독특한 인물로 파악했다.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의지와 의향에 따라  생명을 끊는 바이다.(3 300)" 스메르쟈코프의 유서에 적힌 글이다. 화해와 용서, 타협은 그의 사전에 없는 말이다.


알렉셰이와 일리치

가난뱅이 스네기료프의 아들, 일리치(일류세치카)라는 어린이가 병으로 앓다가 사망한다. 알렉셰이와 일리치의 친구들이 문병을 하고 사후엔 조문을 하며 일리치를 기린다. 알렉셰이가 어린이들에게 당부하는 말과 함께 에필로그도 막을 내린다. 당부의 말 세 가지는 '선량하게 살자, 성실하게 살자, 그리고 우리 서로 잊지 말자'이다.


알렉셰이를 혁명가로 성장시켜서 속편을 쓰고자 했던 도스토옙스키는 이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유작으로 남긴 이듬해인 1881년 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네프스카야 대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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