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읽고 (2화)
인지 혁명
3만 년 전 네안데르탈 인이 멸종했다. 이유로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교배 이론'과 '교체 이론'이 그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최근 몇십 년 간 '교체 이론'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사피엔스가 행한 인종청소의 결과, 지구 상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교체과정에서 대량학살이 발생했고, 이것은 사피엔스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 잔인성을 빼놓을 수 없다는 거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인간의 마지막 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인지 혁명'을 들고 있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방식"이 저자가 설명하는 인지 혁명의 골자다. 인지 혁명을 통해 얻은 강력한 도구는 '언어'다.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소통과 상상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을 확보한 셈이다. 언어가 없었다면, 인간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상징체계를 널리 퍼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신화와 법처럼 사피엔스가 개발한 상징에 주목한다. 기원전 1776년 함무라비 법전과 기원 후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소개한다.
함무라비 법전에 의하면 인간은 두 개의 성별과 세 개의 계급 즉, 귀족, 평민, 노예로 나뉜다. 하지만 3천5백 년 후 독립선언문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평등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8년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을 시도한 흑인, 클레넌 킹은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다. 세 개의 계급이 흑인과 백인, 남과 여, 부자와 빈자로 분화되었을 뿐 문화적 코드로 교묘히 포장된 극심한 차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피엔스의 허구를 이용한 체제 유지 시도는 잔인하고 치밀하다.
농업혁명
저자, 유발 하라리가 '최고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피엔스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 중 하나는 '농업혁명'이다. 주장에 따르면 신석기시대에 시작된 농업은 '편안한 정착'을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식이 되어버린 밀, 쌀, 옥수수, 감자 등이 인간을 길들였기 때문이라는 거다. '길들이다'라는 의미의 'domesticate'라는 영어의 어원은 라틴어 'dom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단어의 의미가 '집'이다. 이 집에 갇혀 사는 존재는 밀이나 쌀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피엔스였던 것이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124쪽)"
농업혁명으로 들어서기 전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이 200 속이나 살고 있었지만 농업혁명 즈음에는 그 숫자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피엔스가 동족만이 아니라 여러 동물 또한 멸종으로 몰아갔다는 주장이다.
"오늘날 세계에는 10억 마리의 양, 10억 마리의 돼지, 10억 마리 이상의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존재한다.(142쪽)"
인류의 통합
사피엔스의 또 다른 특징은 통합의 추구다. 인류는 점차 하나의 집합체로 통합되고 있다. 인류가 수십 명의 집단에서 수백 명 단위의 종족으로 다시 수천수만 명의 제국으로 통합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피엔스가 창조한 것은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 준 '인공적 본능', 즉 '문화'다.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이 있는 후보 세 가지가 출현했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 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247쪽)"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집합체로 통합한 것은 상인(경제)과 정복자(정치), 그리고 예언자(종교)라는 것이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중략) 특히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박해 보였던 가능성이 종종 현실이 되곤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서기 30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로마 황제)가 왕위에 올랐을 때, 기독교는 비밀스러운 동방의 분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이 종교가 곧 로마의 국교가 될 참이라고 누가 말했다면, 사람들은 웃다가 방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339쪽)"
과학혁명
서기 1500년 지구에 살고 있던 사피엔스는 5억 명이었지만, 오늘날 70억 명이 살고 있다. 불과 500년 만에 인구는 14배 늘었다. 과학의 힘이다. 1500년 당시 인류 총생산은 약 2500억 달러쯤 됐고, 인류가 하루에 소비한 에너지는 13조 칼로리였다. 오늘날 인류의 연간 총생산은 60조 달러, 하루 에너지 소비량은 1500조 칼로리다. 과학의 힘이다. 인구는 14배 늘었지만 생산량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었다. 이것도 과학의 힘이다. 과학혁명 또한, 인류에게 재앙일까 축복일까.
"전 세계에서 25~40세이던 평균 기대수명은 약 67세로 성큼 뛰었고, 선진국에선 약 80세가 되었다. 어린이와 유아 사망률이 특히 낮아졌다. 20세기가 되기 전 농경사회 어린이 중 3분의 1이나 4분의 1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대부분 디프테리아, 홍역, 천연두에 희생되었다. 17세기 영국의 경우 신생아 1천 명 당 평균 150명이 출생 첫해에 죽었고, 모든 어린이의 3분의 1이 1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381쪽)"
소수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이 인류 모든 개개인에게 고루 나뉘기를 바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사람의 앞일은 모를 일이다. 2000년 전 예수가 탄생할 때만 해도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는 변방의 극소수들만을 위한 종교였다. 공평과 공정, 평등과 평화가 물 흐르듯 하는 세상이 혹시 과학혁명의 끝에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