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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Dec 02. 2021

민 씨 일가와 양녕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태종)

방원의 발자취는 유혈이 낭자하다. 정적을 제거하는데 전문가였던 그는 왕이 되자 왕권 강화에 몰입한다. 공신들과 그의 처갓집 사람들의 힘을 빼는데 주력한다.


시범케이스로 걸려든 공신은 이거이, 이저 부자였다. 세자였던 방석과 왕자였던 방번의 기생첩들을 이들 부자가 각각 나누어 가졌고, 심지어 아들 이저는 자신의 아버지, 이거이가 관계했던 효도라는 기생을 취하는 등 물의를 빚는다.


원경왕후와 민 씨 형제들

태종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을 제거하고 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장인과 처남들이 목숨을 걸고 태종을 도왔다.


쿠데타는 성공했고, 원경왕후 민 씨와 그녀의 친정식구들은 호사를 누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태종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3권, 99쪽

아프리카 속담에,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남의 친절에 보답하고 있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있다. 태종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왕이 되자마자 가례색이라는 혼인을 위한 기관을 만들어 자신의 후궁을 들이는 작업에 열중한다. 두 살 많은 원경왕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방원이 요놈 봐라? 누구 덕에 지가 왕이 됐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제로도 바가지를 심하게 긁었던 모양이다. 태종은 왕이 되자마자 아내를 멀리하고 처남들을 경계했다.


민무구, 민무질, 민무회, 민무휼 등 네 형제는 매형의 왕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왔고, 또 성공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역모 혐의였다. 그들은 연차를 두고 차례대로 사약을 받는다.


양녕

11세에 세자가 된 방원의 장남 이제, 양녕은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했으며 얼굴도 핸썸했다. 17세 된 되바라진 세자는, 봉지련이라는 기생에게 홀리면서 화려한 여성편력을 시작한다. 그러니 학업이나 정치 수업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기생이나 건달들과 어울리며 사냥 등 엽색행각에 몰두했다. 또 양녕은 곽선이라는 벼슬아치의 첩, 어리를 빼앗아 사랑에 빠진다. 나중에는 아이까지 낳는다. 이쯤 되면 양녕은 곧 왕이 될 세자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할 만하다.

이 편지로 양녕은 폐세자가 된다. 3권 185쪽

세자는 왜 이렇게 됐을까? 양녕은 어린 시절을 외갓집에서 보낸다. 태종에 의해 멸족을 당하는 민 씨 형제들과 함께 생활했다는건데...


어린 양녕에게 민 씨 형제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력을 행사해 세자가 왕이 됐을 때 정치적 권력이 누수될 것을 염려한 태종은, 민 씨 형제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잔인한 태종에 교만했던 민씨 형제들이 결국 당한 것은 아닐까.


원경왕후와 그 친정식구들에게 처절하리만큼 잔인무도하게 대한 것은 어쩌면 민 씨들의 성정이나 삶의 방식이 태종이 허락하는 범위를 너무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만한 대목이다.


세자의 품위 없는 행동의 근본은 민 씨 일가와 함께 지낸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충녕

충녕, 이도는 양녕이 비행을 일삼는 순간, 또는 무식을 드러내는 순간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양녕이 매형의 기생첩을 데려가려고 할때, 사냥에 몰두해 다른 일엔 신경을 못 쓰고 있을때, 여지없이 동생 충녕이 등장해 충고한다.


충녕을 미는 세력이 있었다는 반증 아닐까. 양녕과 비교가 되도록 결정적 순간마다 충녕을 등장시키는 그런 정치세력 말이다.


이도 역시 풍채가 좋았다. 그리고 학문이 뛰어났고, 예술적 안목도 발군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양녕과 달리 왕의 재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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