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 독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태산이높다하되 Dec 05. 2021

공신 세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단종, 세조)

김종서에게 철퇴를 내리친 인물, 임어을운

단종이 왕위에 오를 때 나이는, 15세. 영월로 유배되어 사사될 때 나이 17세.

태종 이방원의 손자들 중 한 명이었던 수양은 자신의 종, 임어울은을 시켜 단종 내각의 실세, 대호 김종서에게 철퇴를 휘두르게 한다. 계유정난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시작됐고 성공했다. 종 임어울은은 김종서와 함께 죽임을 당한 정승 황보인의 집과 종들을 선물로 받게 된다.

5권 20쪽


김종서, 황보인 등은 수양을 견제하기 위해 안평과 손을 잡았다. 금성대군을 비롯해 단종과 친했던 인사들이 모두 김종서와 안평의 편이었다. 이들은 수양이 정권 장악에 뜻을 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수양이 왕까지 되려고 하는 줄은 미처 몰랐던 모양이다.


주나라를 세운 주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하면서 무왕의 동생 주공이 섭정을 하지만 주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나서 성왕이 성인이 되자 7년 동안의 섭정을 중단하고 즉각 일반 신하로 복귀했다는 중국의 과거를 떠올렸던 것일까?


한명회

김종서 등이 안평을 비롯한 종친들과 손을 잡자, 수양은 양녕을 비롯한 또다른 종친들과 연합한다. 그리고 뒤늦게 과거에 급제한 권람의 소개로 재야의 한명회와 원팀이 된다. 권력 밖에서 맴돌던 한명회는 스파이를 파견하여 정적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각 부문에 필요한 인재들을 포섭한다.


이성계에게는 정도전, 태종에게는 하륜, 세조에게는 한명회라는 책사가 있었다. 그런데 세대를 거치며 왕들의 면모나 책사란 인물들의 수준도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정도전에게는 재상 중심적 시스템과 제도 정비, 민생안정, 북벌 등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하륜으로 내려가면서 비전은 희미해진다. 태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인물 정도로 그쳤으니 말이다.


한명회로 가면 더욱 형편없어진다. 그는 권력 그 자체에 목을 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책사에서 왕의 장인으로 정승으로 그렇게 평생 권력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인물이 한명회다.


이들 모두가 닮은 점이 있다면 정적을 제거하는 데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잔인무도했다는 사실이다. 일개 노비가 일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는, 정승 머리에 철퇴를 가하도록 하는 정치세력, 과연 신뢰할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조선은 수양 때 망했다고 봐야 한다.


공신 세상

수양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그리고 정난공신, 43명의 이름을 올려 이들에게 수십만 평의 토지와 노비, 면책특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왕이 되어서는 좌익공신, 원종공신을 책봉하고, 또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적개공신들에게 상을 내리고 기존의 공신들을 견제한다.

5권, 80쪽

세조가 책봉한 수 많은 공신들로 인한 폐해는 사회문제가 된다. 면책특권을 받았으니 공신과 그 가족들은 백성들 알기를 우습게 알고 아무렇게나 대했기 때문이다. 5백년 뒤에 등장한 새로운 귀족인 재벌 2세나 3세가 일반인들에게 부렸던 행패의 원조라고나 할까.


계유정난에 성공하고 나서 정난공신에 올라있던 이름 중, 이사철이 눈에 띈다. 문종의 치료를 담당했지만 죽음에 이르게 했던 어의 전순의를 변호해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뚜렷한 공로도 없이 정난공신 1등에 책봉됐으니 의심할만하다. 이 또한 문종 독살설을 뒤받침 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이상 6명은 단종의 복위를 추진하다 발각돼 유명을 달리한다. '생육신'의 한 명인 남효온이 <육신전>을 지으며 이들 6명을 사육신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외 알려지지 않은 단종 복위를 도모한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성승, 김문기, 권자신 이상 세 명이다.


한편 단종 복위 추진단에 이름을 올렸다가 배신을 선택한 인물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던 김질이다. 김질 자신의 장인, 정창손을 찾아가 단종 복위 운동의 실상을 밀고했다. 결국, 세조의 총애를 받아 좌의정까지 지낸다. 김질은 사후 500년이 지나서까지도 자신이 배신자로 회자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 언제든 어디서든 그들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말들이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종 독살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