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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Dec 18. 2021

換局 & 안용복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숙종)

17세기 조선에서 있었던 일,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의 국토라고 주장해 일본의 동의를 받아낸 수군의 노잡이 출신, 안용복은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양도감세장'이라는 지위를 사칭한 혐의로 죄인이 되어 유배된다.


조선의 국왕과 사대부들은 울릉도와 독도가 누구 땅이 되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었다. 지배층이 될 대로 돼라 하던 중에 천민 출신 일개인이 이룬 업적에 대해 노고를 치하하고 벼슬을 내려줘도 시원치 않을 상황에서 안용복은 어이없게도 벌을 받은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선 사대부들의 무능함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개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효종이나 윤휴와 같이 북벌을 주장한 위인들이 정적에 의해 제거되는 상황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17세기 조선의 현실이었다.


숙종은 부왕 현종의 뜻에 따라 처음에는 허적을 중심으로 남인을 등용해 서인을 견제한다.

33쪽

그렇지만 남인은 청남과 탁남으로 분화되어 개혁을 앞세운 윤휴와 현실과의 적당한 타협을 내세운 탁남으로 분화한다. 청남의 윤휴에 대해 다시 한번 거론해야 한다. 윤휴는 청나라가 명의 후예, 한족들이 일으킨 삼번의 난과 오삼계의 난으로 곤욕을 치르는 틈새에 북벌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공상적 제안으로 왕과 대신들을 현혹하려고 한 인물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계획과 눈앞에 보이는 성과, 즉 심양과 요동, 만주 일대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같은 당파의 사람들조차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청남과 탁 남으로 남인이 분열하는 사이, 서인들은 숙종의 종친이 되는 김석주와 손을 잡고 남인들의 기세를 꺾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숙종 6년의 경신환국이다.


이때 서인도 남인처럼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한다. 남인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노론과 달리 소론은 남인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강경파의 논리가 명료하고 강한 인상을 주는 법, 경신환국으로 청남의 대표주자, 윤휴가 사사된다.


남인에게도 기회가 온다. 바로 장희빈의 등장이다. 그녀는 숙종 15년 기사환국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다. 그녀는 남인들과 가까웠던 역관의 장현 집안의 여성이었던 것이다.


노론가의 인현왕후 민 씨를 내쫓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만들기 위해 숙종이 기획한 것이 기사환국이었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장희빈의 아들이 원자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사약을 받는다.


그런데 숙종은 우연한 기회에 무수리 최 씨를 알게 되는데, 의지가지가 없던 그녀는 왕의 성은을 입자 인현왕후가 중전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애를 쓴다. 장희빈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최 씨는 훗날 영조가 되는 아들을 낳고 숙빈이 된다.


인현왕후가 중전이 되고 중전이었던 장희빈은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다. 이것이 숙종 20년의 중전 교체, 사실은 정권교체를 의미하는 갑술환국이다. 인현왕후가 병으로 죽자 위기를 느낀 숙빈 최 씨는 왕에게 장희빈이 중전을 저주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장희빈은 왕이 될 세자를 두고 사약을 받는다.


남인은 제거됐고, 이제 노론과 소론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 송시열 추종자(노론)와 윤증의 추종자(소론) 사이에서 숙종이 송시열 편을 들면서 상황은 종료된다. 이를 병신처분이라고 한다.


숙종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환국을 일으켜 왕권을 강화한 인물이다. 하지만 왕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신하들의 부화뇌동이나 복지부동 현상은 심화되었다. 나라의 기강은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곤궁해진다.


"전하께서는 여러 차례 조정의 신하들을 나오게도 하고 물리치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잡게 한 초기에는 무릎에라도 앉힐 듯하시다가, 배척할 적엔 연못에 밀어버리듯 하십니다. 정권이 바뀔 때엔 주살이 번번이 행해지니 나라의 명맥이 어찌 병들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사람의 마음이 어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181쪽)" 이상은 숙종 19년, 사간 이동표의 상소다.


209쪽

"동래 왜관을 드나들며 배운 어설픈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조선 개국이래 그 어떤 외교관도 이룩하지 못한 빛나는 외교적 성과를 일궈낸 안용복은 수군으로 노 젓는 일을 담당했다 한다. 말하자면 조선의 최하층 백성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용복은 유배에 처해졌다. 그 이후 어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기록이 없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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