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날카롭고 희망은 견고하니 행복은 나에게 달렸다!

애들레이드, 130일!

by 정태산이높다하되

호텔에서 격리한 기간 14일을 제외하면 약 130일 간 애들레이드에서 지낸 셈이다. 2012년 이민 이후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다. 직장과 노모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여전히 아쉽고 섭섭한 감상에 젖는다.


80년 인생을 생각하면 이제 30년도 남지 않은 기간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 이제 꼰대가 됐다.

집 앞 공원에서 산책 중인 아내와 딸, 12월 초

격리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작년 8월 말, 호주에 도착해 14일간 강제 격리를 당했다. 애들레이드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에서 주정부가 제공하는 식사와 음료, 과일을 먹으며 웅녀가 되기 위해 동굴 로 들어간 곰처럼 지냈다.


간호사, 정신과 의사, 경찰관이 매일 오전 한 시간쯤 시차를 두고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 나의 안부를 물었다.


열 수 없도록 잠긴 창문의 밖은 옆 건물의 벽으로 막혀있었다. 하지만 에어컨디셔너와 공조기가 돌아가 답답하지는 않았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14일, 한 번쯤 경험해 봄직하다. 그런데 예상한 바와는 다르게 차분한 독거 생활에 방해되는 요인은 머릿속에서 마치 한 마리 똥파리처럼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잡념이었다.


격리하는 동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두 차례 읽었다. 작년 봄에 사뒀던 책을 그제야 읽은 것이다. 아무리 19세기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해도 도무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책이다.


세 권으로 나뉜 책의 총 페이지수는 1500에 육박하는 데다가 문체 또한 극강의 만연체이다 보니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이 책을 싸들고 오길 잘했다. 격리기간에 딱 맞는 소설이었다.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시간 배경으로, 또 혁명 전 왕정의 시대착오적 폐해가 자심했던 러시아를 공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스토예프의 글은 끊어질 듯 하염없이 이어지는 만연체였다.


역사와 인문의 무게감이 던지는 지적 공격을, 한정된 공간에서 주어진 절대 시간의 길이가 잘 막아주고 있었다고나 할까.


브런치

격리기간에 새롭게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작가 플랫폼인 브런치에 도전했다. 두어 번 시도 끝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행복은 나에게 달렸다>라는 가족 이민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서 브런치 책으로 뚝딱 만들었다. 기록 자체가 목표였으니 일단은 성공이다. 아들과 딸이 나의 사후,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하는 마음이 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새삼 나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족보와 사진 외엔 아버지가 딱히 남긴 것이 없다. 그의 말과 행동은 서서히 잊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아들과 딸이 혹시 그들의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때, 찾아 읽어볼 수 있도록 여기저기에 기록이란 것을 해두기로 결심한 것이다.


독서

윤태호의 만화, <미생>을 여러 번 읽었다. 업무와 인적 구성원들, 그리고 경험들이 내가 직장 생활하면서 겪은 그것들과 유사해 흥미로웠다.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업무를 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수도 없이 했고, 잦은 외국 출장과 국내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당시의 삶을 생각하면서도 딱히 어울리는 수사가 없었는데, 윤태호의 만화책을 읽으면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지! 나도 '미생未生'이었던 거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서 <미생>의 오 차장 눈은 항상 빨갛다. 나 또한 차장이던 시절, 충혈된 눈에 더해, 머리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원형탈모를 두어 개씩 달고 살았다. <미생>을 읽으면서 나도 내가 직장 생활하며 겪은 일들을 소설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년 전에 읽고 감탄한 후 세 번쯤 읽었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여행의 기술>을 다시 읽었고,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도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박시백의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을 새로 읽으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노론'이라는 당파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들이 집권하게 되는 과정, 또 그들의 퇴행적 행보가 우리 역사에 끼친 심각한 폐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놀라운 것은 집권당, 노론의 후예들은 오늘날까지도 국가의 안위나 명성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족

아내는 앞 뒷마당의 정원을 가꾸느라 바빴다. 한 달에 한 번쯤은 꾸준히 잔디를 깎았고, 여름이 되면서 햇빛이 강렬해지자 정원에 물을 뿌렸다.


복숭아, 포도, 살구, 고추, 깻잎 등도 소량이지만 수확을 거두었으며, 또 늘 실내에서만 지내는 반려묘, 딸기에게 바깥바람을 쐬게 해줘야 했다.

뒷마당과 반려묘, 딸기 뒤통수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상의해 결정한 일은 앞마당에 있던 100년도 넘은 두 그루(침엽수 & 체리나무)의 나무를 제거한 일이었다. 바람이 강한 날, 육중한 가지가 떨어져 집을 파손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되는 아들은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로 바빴다. 그는 이제 웬만해서는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도 그저 옆집 아저씨처럼 대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해 볼 일이 있으면 미리 예약을 한다.


그는 내가 있는 동안,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스테이크를 준비해 나와 아내에게 딱 세 번 대접해주었다.


2022년 8학년이 되는 딸은,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예민하지만 다행히 따뜻한 심성을 유지하고 아빠에게 다정하다. 그녀가 피아노나 플루트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모차르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곡을 연주하는 음악회에 같이 다녔다. 아직은 아빠와 어울려주는 딸에게 나도 모르게 그만 고마움을 느꼈다.

승마는 곧은 자세를 위해 좋은 운동이다.

책 읽기와 음악 연주는 좋아하지만 운동은 등한시하는 딸을 위해 내가 생각한 것은 승마였다. 딸은 일주일에 한 번 말 타러 가는 일은 즐겼다.


또, 다음 학기부터 시작하는 스포츠로 배구를 선택한 그녀에게 저녁마다 리시브와 토스, 서브 연습을 시켰다.


줌 회의

사무실의 임원들과는 매주 월요일 오전, 줌 회의를 했다. 한국과 호주는 시간대가 거의 같아 원래의 루틴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줌 회의는 어쨌거나 코로나19가 제공한 새로운 풍경임에 틀림이 없다.


회의를 하면서 소득이라면 회의는 최대한 간소하게 하는 편이 생산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벌어진 사건과 벌어질 사건에 대한 대책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비대면은 한계가 분명하다. 느낌의 전달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확한 발음과 표정으로 임해야 하기 때문에 가식과 허위를 감출 수 있다.


이것은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요즘 대부분의 업무에서는 직관과 느낌의 중요성은 급격히 줄고 객관적 데이터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골프

작년에 한국에서 골프 지도자 자격증에 도전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실기에서 한 타 차로 떨어졌다. 올해는 필기시험은 생략하고 실기와 면접시험을 치르면 된다.


이곳 애들레이드 오스몬드 골프 클럽에서 약 4개월여 동안 호주 공식 핸디캡을 19에서 13으로 줄였다. 학국에서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9홀 플레이 중 허용되는 오버 타수는 여섯 타다.

GA(Golf Austalia 호주 골프) 핸디캡

올해엔 실기에서 합격할 수 있을 듯하다. 교수법과 골프 규칙을 묻는 면접에서 점수를 획득해야 하니 이제 합격은 이론 공부에 달렸다.


피터 드러커가 "사업의 목적은 혁신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낡은 것을 새롭고 가치로운 것으로 바꾸는 일, 그렇게 보면 인생의 목적도 역시 혁신이 아닐까. 그러자면 나부터 최대한 꼰대의 몰골을 탈피해야 한다.


아닌 줄 알면서도 태도와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나와 세계에 해만 될 뿐이다. 걱정과 우려를 기대와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작업, 그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자 목표다. 내 인생 혁신의 출발은 읽고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