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오전,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잠시 뒤 알람이 울리기에 휴대폰을 보니 자가격리 앱이었다. 자가진단 리포트를 하라는 거였다.
그러고 나서 몇 달전부터 시큰 거리던 어금니를 치료하러 치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앱을 살피니 외출을 신청하는 란이 있었다. 동네 치과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한 후 그 시간에 맞게 외출 신청을 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보건소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급한 상황이 아니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치과는 마스크를 벗고 입을 벌려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안 될 것 같아요. 많이 안 좋으세요?"
"네, 통증이 심해서요. 어제 받은 검사 결과도 음성으로 나왔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아요. 마스크를 벗고 입을 벌려야 하는 거라 병원에서도 곤란해할 것 같은데요?"
치과에 전화를 걸었더니 처음엔 오라고 했다가, 보건소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결국, 격리가 끝나고 가기로. 치통은 응급상황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 인정하자.
비행기를 타기전, 공항을 빠져나온 상황에서 다시 한번, PCR 테스트 결과가 음성이었다. 3일 간격으로 검사한 결과가 음성이면 이 정도 외출을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닌지 따져보고 싶었지만 그만뒀다.
어머니와 하루 종일 같이 지내게 된 것도 모처럼의 호사(?)다. 어머니는 7남매 중 장녀다. 요즘 이슈는 올해 95세가 된 외할머니의 간호에 관한 문제다. 시골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외삼촌 부부도 이젠 칠순이다. 그 노인 둘이서 할머니를 봉양중인 거다.
외할머니는 고령인 데다 기저질환도 있어서 보건소의 권유로 백신을 맞지 못했다. 요양병원으로 모시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외숙모는 최근 무릎관절 수술을 했다. 여러달 재활이 필요한 수술이다. 그러나 그녀는 한달 만에 복귀해 거동이 불가능해진 시어머니의 시중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50년 가까운 시집살이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이모들이나 작은 삼촌도 번갈아가면서 외할머니를 찾아 이삼 일씩 간호를 하다가 가지만 팬데믹 상황도 그렇고, 또 멀리 떨어져 사는 분들은 그나마도 하기 힘든 형편이다. 결국, 늘 곁에서 모셔야 하는 사람은 큰 삼촌 내외 뿐인 거다.
고생하고 계신 숙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밝은 성격의 숙모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하루하루는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하느님이 알아서 잘해주실 거야, 조카 너무 걱정하지 마."
"하느님이 계시면 지금껏 숙모를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시켰겠어요?"
시니컬 하게 대꾸했지만, 현재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말고는 없는 형편이다.
저녁엔 이모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작은 삼촌의 큰 딸이 상견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더니 작은 삼촌이 대뜸,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대꾸가 섭섭했던 이모는 언니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작은 삼촌 내외의 행태를 성토했다.
젊잖고 섬세하며 심성이 고운 작은 삼촌, 그는 신중한 성격이다. 그리고 혼기를 훌쩍 지난 큰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그런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 상견례를 무사히 마치고 결혼식 날짜까지 잡고 나서야 비로서 친지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을까?
엄마와 이모는 혼기를 앞둔 손주 손녀가 있을만큼 고령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시누이 역할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작은 외숙모에 대한 험담으로 이어지는 노(老) 자매의 통화를 들으며 인간사의 비애를 느꼈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엄마를 제일 많이 닮은 사람이 당신이야."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볼 것,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치과 가겠다고 떼 안 쓰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