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2일차

저울

by 정태산이높다하되

몸무게를 쟀다. 67킬로그램이다. 눈금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도 저울에 올라섰다. 역시 67킬로그램!


다이어트를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연전에 비해 둘 다 2~3킬로그램쯤 빠져 있었다. 확실히 저녁 식사 이후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니 나왔던 배가 좀 들어간 모양이다.


"더 빼야돼. 나는 키도 작은데 67킬로나 나가니 큰일이여!" 저울을 내려서던 그녀가 수줍게 하는 말이었다.


어머니가 비켜서자 손때가 묻은 저울이 보였다. “93년 2월 14일 창립 26주년 주식회사 동보석유"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몸담았던 회사다.


93년은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던 해였고,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하던 해였으며, 패자 김대중이 정치를 그만두고 외국으로 표표히 떠나가던 해였다.


그리고 그해 초 버스 정류소에서 5천원 짜리 지폐를 내고 토큰을 한개 사려던 근육질의 중년이, 잔돈이 없다는 핑계로 판매를 거부한 가판 매점의 청년에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한 해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좁은 매점에서 나온 청년 또한 운동선수를 방불케 하는 대단한 거구였다. 중년의 신사는 여전히 큰소리는 쳤으나 기세의 위축은 현저했다.


어머니와 방을 바꾸기로 했다. 집은 현관입구에서 가까운 작은 방, 거실을 가로질러 들어가면 있는 화장실이 딸린 안방, 부엌과 가까운 또다른 작은 방, 이렇게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안방과 부엌과 가까운 작은 방 사이에 별도의 화장실이 하나 있다. 나는 부엌과 가까운 작은 방에서 자고, 현관에 딸린 방을 옷장 겸 서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격리 2일차에 도착한 격리통지서

안방을 사용하던 어머니는 하루의 대부분을 거실과 부엌에서 보낸다. 하루종일 같이 지내다보니 동선이 파악됐고, 그 결과 내가 안방을 사용하고 거실과 작은 방 두 개를 어머니가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고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였고, 어머니가 일찌감치 제안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쓸 안방으로 테이블과 의자, 책장들을 모두 들여놓고 거실에 있는 방 두개를 어머니가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납을 고민하던 중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뒤지보니 역시 없는 서비스가 없다. 수납전문가를 찾아낸 것이다.


계절별 옷과 모자, 벨트, 양말, 등산용품, 골프 용품 등을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전문가의 활약을 기대한다.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되던 재작년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따로 살고 있던 나는 혼자가 된 어머니와 한집에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다 방문해 잠깐씩 어머니를 만나던 때엔 몰랐던 사실 한가지를 같이 지내게 되면서 알게 됐다.


매일 아침 그녀는, 아버지가 회사에서 창립 26주년 기념품으로 받아온 30년 된 저울에 의식을 거행하듯 올라서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