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4일 차

개명

by 정태산이높다하되

어머니는 개명(改名)을 했다. 남편과 자식들조차도 모르게. 10여 년 전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위해 공항에 갔을때 여권과 주민등록 상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그녀의 고향 친구는 어느 점쟁이를 찾았다가 무속의 힘에 매료되어 함께 개명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 점쟁이가 매우 교묘하고 비열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이나 자식들에게도 알리지 말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자신의 고객들에게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현시점의 무속(巫俗)은 과거 민중들을 위로하던 무속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박경리의 <토지>에 등장하는 월선의 모친은 무당이었다. 그녀는 마을의 농민들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100년 전의 무속은 현재의 무속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좇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현재의 무속은 상술과 속임수의 환상적인 조합"일뿐이라고.


격리 중이다 보니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나마 간신히 졸업한 것을 기적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제천 산골에서 7남매의 장녀였던 그녀는 학교 갈 나이에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수시로 학교 수업을 빼먹었다고.


아기 돌보는 일이 하도 힘들어 우는 동생의 등짝을 한번 때렸다가, 마침 그것을 본 외할머니가 자신의 등짝을 더욱 세차게 때리더라는 얘기를 할 때는 눈시울이 벌게지기도 했다.


또, 7살 때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 외할머니는 7살 된 딸을 데리고 등에는 둘째를 업고 보따리를 하나 머리에 이고, 살고 있던 제천시 덕산면에서 친정인 청풍면까지 20킬로미터나 되는 길을 걸어서 갔던 모양이다.


지금은 수몰된 지역의 꽁꽁 언 강바닥을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쥐고 하염없이 걷는 7살짜리 꼬마 아이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듯 설명하며 어머니는 연신 내게 상상을 좀 해보라는 말을 했다.


꽁꽁 언 몸으로 외할머니의 친정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해진 후였다고 한다.


바뀐 어머니의 이름도 이젠 익숙해졌다. 어머니는 이름 바꾸고 모든 일이 좋아졌다고 했다. 사실, 나는 뭐가 좋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동의하는 척했다.


당연히 반세기도 더 전의 상황보다는 지금의 삶이 더 좋아졌을 테니까. 그리고 동의를 안 했다가는 이름을 또 바꿀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