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며
홀로 마주한 차디찬 그 바닥보다
따뜻한 그곳이 좋지요.
내가 모든 걸 잃었던 날
당신은 영원한 것을 얻었지요.
저는 평생 깊은 어둠 속 죄인이 되었지만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감히 용서 따위를 구해봅니다.
그냥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죄책감으로 나를 지옥 속에서
구원해선 안된다고 그렇게 구해봅니다.
평생 죄책감으로 살면
그렇게 고통과 상실이라는 지옥에 나를 가두고
그렇게 나중에 다시 만나면
조금은 덜 미안할 수 있도록
나 편하자고 평생 지옥 속에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보낼 수 없는 사람인데
평생 나뿐이었던 사람인데
제복 입은 죄인은
마지막 인사조차 거부당한 체
이미 바람이 가져간 차디찬 생명을 마주합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마주하게 하신
주님을 향한 원망을 토해내 보기도 하고
깨끗한 천으로 사뿐히 이제야 편히 누워계신
그분을 보며 원망과 울분을 토해내 보기도 하고
제복을 찢어 재끼며 이 딴 게 뭐라고
내 가슴을 성난 짐승처럼 쳐내보기도 합니다.
이미 식어버린 생명 앞에
어떤 것을 토해내고 누굴 원망해야
그 모든 것들을 지워낼 수 있었을까
시간 지나면 잊힌다는 거짓을
더 선명해지는 마지막 모습으로
오래오래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당신을 잊지 않을 각오로
전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은 단 한마디가
살아있는 칼이 되어
내 심장에 그대로 박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려고요.
작은 쪽지에 남겨진 그분의 글씨에
또 나를 찢어발기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다."
그렇게 데려가셨는데 은혜라
나의 퇴원과 훈련을 끝내며
새롭게 시작한 그 시점에 서서
마주한 내 삶의 모든 상실
그것은 그분에겐 영원이라
평생의 외로운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켜져 있던 극동방송에서도
영원한 자유와 은혜를 이미 얻으셨겠지요.
벌써 일 년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상실이라는 지옥을 영원토록
안고 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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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국군병원 퇴원과 훈련이 끝나자마자
연락이 갑자기 안 된 어머니께 군복 입은 체
쉴 틈 없이 내달렸지만 그렇게 차디찬 모습으로
쓰러진 모습으로 발견된 어머니를 발견했어요.
변사자...... 고독사..... 남의 일이고 기사라고
생각했지요. 방심했던, 어머니의 건강하시다는
말을 쉽게 믿었던 군복 입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1년이 흘러 전역을 했지만 저는 여전히
항공기 사고와 어머니를 그런 모습으로 잃은
PTSD 환자가 되었습니다.
세 번의 암과 사고와 상실의 트라우마는
제 모든 삶을 앗아갔지요.
그럼에도 저따위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영원한 평안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군복을 입고 있던 21년, 25년 전 부모님 두 분
임종을 못 지켰습니다. 제복 입은 죄인이었죠.
그렇게 상실을 안고 전역했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기특하고 고생했다고 해주시겠죠? 하지만 저는 두 분, 특히 어머니를
그렇게 잃고 군복을 입은 체 경찰, 소방관분들과
한 자락 희망을 안고 문을 따고 들어갔던 그 향기를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보지 말라며 주저앉던 나를 데리고 나와 주셨던 경찰분께 너무 감사하지만 전 이미 다 봤고 검시하던 모습, 발견된 모습, 어머니의 향기, 집안 가득 공기가 아직도 코끝에 생생합니다.
집안 가득했던 냉기와 다 가시고 어머니와 둘이
남겨져 있을 때 터져 나오던 원망과 통곡은 누구를 향함이었을까요? 늦게 찾아와서 혹시 살려낼 수도 있었던 게 아닐까? 모든 것이 다 내 탓 같아서 그렇게 나를 향한 분노를 토해냈던 거 같아요.
시간이 약이라고 쉽게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저를 위로하시고 정신 차리라는 그 의미는 알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것들도 있어서요. 그립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눈감으면 아니 곳곳이 다 어머니고 아버지예요.
살아계실 때 후회 안 하게 잘하라는 말 다 꼭 맞아요. 후회라는 단어조차 저에겐 사치네요.
잊지 않을 거예요. 나중에 다시 뵐 때 덜 죄송하려는 저에게 주는 벌 같은? 나 편하자는 거예요.
오랜만에 글 쓰면서 무겁네요.
그렇지만 쓰면서 또 기억하고 새기려고요;;
후회 없이 지금 사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