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덕분에 따뜻한 햇살과 푸르른 하늘 아래 전나무 향기 가득 머금은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느린 걸음걸음
숲을 온전히 느끼며 걷고 있었는 데
이곳 전나무의 향이 KF-94의 마스크를 뚫고
내 콧 속 가득히 존재감을 은근히 뿜어내더라.
오랫 만에 나를 향한 신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정신없이 달려온 시간들에 대해
숲과 바람이 나를 향해 "지금까지도 충분히 수고했어. 잠시 쉬렴"이라고 대화를 시도하는 듯...
멈춤은 억압이 아닙니다. 멈춘다는 것은 고요해지는 것이다
얼어버려 계곡물의 소리조차 멈춘 곳에
근처 나무에 걸려있는 '멈춤은 억압이 아닙니다. 멈춘다는 것은 고요해지는 것이다' 글귀는 잠시 느린 걸음마저 멈추게 했다.
멈추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랬었지. 일중독. 운동중독... 그랬었다. 중독자처럼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삶. 몰랐었다. 젊었을 땐 그렇게 중독돼서 사는 게 열심히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게 내 마음과 몸까지 빨리 아프게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알기 전까진. 휴식이 필요했다는 것을 아프고 나서야 중독할 수 없는 지경이 돼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권위 있는 자는 나여야만 한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나의 중심을 잡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여야 한다. ㅡ 에일리ㅡ
멈춰서 지금까지 나의 삶을 성찰해보았다.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결정받을 수밖에 없었고 나의 주장과 생각보다는 남이 먼저 일수밖에 없었던 업무 환경 속에서
최근 꼬꼬무에서 에일리가 던졌던 위의 말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희생하며 건강도 버려가며 앞만 보고 살았던가,
나의 중심은 어쩌면 주변 환경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가스 라이팅 된 삶을 살고 있지 않았는지, 복종하고 살아왔던 그런 삶들이 내 가치관과 다르고 잘못되었더라도 그게 맞다고 인식되어 그냥 살아왔던 것이 아닌 지를.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봐야겠다.
잠시 멈춰서 숲의 따스하고 포근함 속에
바람과 숲과 나의 숨과 대화를 청해보았다.
지금도 뛰고 있는 내 심장박동 소리가 차분해지며 숲과 바람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있고 그들도 함께여서 행복했음을 공감하며 월정사 전나무 숲을 뒤로하고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