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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느낌으로 압니다

딸의 재발을....

동생들에게 난리가 났습니다.

엄마가 제가 이상하다고 아픈 거 같은 데 이상 없다 한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지 이제 일 년.

가끔 퇴근길 활주로 끝에 지는 황혼의 시간 어딘가 아버지께서 "오늘도 수고했어" 할 것만 같은 데.

엄마는 치매 증세가 점점 악화가고 있으십니다. 차마 제가 재발했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할 지 알기에......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라며 과거의 집안 땅문서를 모두 다른 이에게 넘기고 사기당해 평생 본인 가슴 속에 한으로, 잊지 못할 그 일들.....

평생 가족들 앞에 죄인으로 살고 아직도 그 시간에 멈춰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시는 데.....


나의 두 번째 암 수술을 앞두고 꿈도 꾸셨다, 느낌이 이상하다, 분명히 아픈 거 같은 데 얘기를 안 한다라고 죄 없는 동생들만 달달 볶으십니다.

그럴 만도 하시겠지요. 아버지 기일을 보낸 지 얼마 안 됐으니......


오리 떼들이 집 앞 논길을 유유히 지나갑니다.

서로 의지하며 쪼르르 붙어가는 모습에 부모님을 같은 모습으로 따라가던 어린 시절의 저를 봅니다.

부모님과 떨어질 새랴 동생들과 빠른 걸음을 재촉하던 그때를.....

참 어린 소녀가 건강하고 씩씩하게 하루하루 아무 걱정 없이 살았던 시절, 그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해 보였습니다.


두 번째로 암이라는 친구와 함께 세상과 맞서며 살아가는 요즘 D-16 수술일을 계산합니다.

주변에선 군인아줌마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씩씩해 보여서 안쓰럽고 슬프다 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ㅡ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ㅡ

누구나 죽음 앞의 공포 앞에선 담담해지기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다만 진실을 숨긴 채 거짓의 담담함으로 표현할 뿐 누구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그 깊은 심연의 티끌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더 진급도 하고 싶고 가족들 덜 고생시키며 군생활을 해나가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욕심들과 내가 나에게 휴식해야 한다며 보내는 몸의 변화들, 그 위험한 시그널들을 모른 체하고 아직 나는 더 나아가고 싶습니다.  

이러다 죽는다는 지인들, 그렇습니다.

답은 모든 살아왔던 20년 가까이의 이 삶을, 시공간을 내려놔야 할 때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으면 전역과 앞으로 먹고살 길

또 다가오는 현실이라는 골리앗 앞에 턱 막히도록 마주 합니다.

ㅡ 눈사람 자살사건 중 ㅡ

너무 치열하고 뜨거웠지만 한편 너무나도 오랫동안 춥게 지내왔던 나의 삶들 이제 감히 이 무게를 내려놓고 따뜻한 물에 녹기를 선택한 눈사람처럼 저도 녹아내리고 새로운 삶을 꿈꿔야 할까요?

무사히 잘 수술받고 퇴원하길, 그리고 감히 성경 말씀의 다윗이 되어보길 기도하며 오늘도 가슴속에 핵폭탄을 안고 출근해 보렵니다.


#유방암 # 수술 전 # 엄마 치매 # 가족

# 황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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