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기 상피내암인 줄 알고 수술했는 데 막상 수술해 보니 0-1기 사이에서 최종 1기 암환자가 된 오늘 저녁. 병원 밖을 걸어 나오면서 남편과 나는 둘 다 말이 없었다. 수술도 잘 마쳤으니 우리는 그래도 두 번 암에 걸렸어도 이만하기 다행이고 감사하다 생각했다.
오늘은 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만이라도 신을 감히 부정해 본다. 내 삶에 신이 존재한다면 지금의 고통을 끝이 아닌 다시 시작되는 일은 없었어야 했다. 남편 앞에서 애써 눈물을 참으며 남편 좋아하는 달달구리 공차를 사주고 애써 초기암이라 괜찮다 했다. 남편이 그런다. 신은 없다고 내가 말했었지?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 신이 두 번이나 암 걸리게 하고 다 끝났다 생각했는 데 방사선에 호르몬 약과 주사에 유전자검사까지 다시 힘든 시작을 주시는 데 신은 존재하지 않아 당신이 만든 허상일 뿐. 그냥 오늘은 반박하지 않았다. 종교 전쟁도 싸울 힘이나 있을 때나 하지 지금은 지친다. 인정하지 않는 쓴웃음만 날리고 만다.
해가 내린 분당서울대병원
그렇게 돌아오는 고속도로 내내 우리 둘 사이엔 말없이 정적만 흐르고 자주 듣던 라디오 방송조차 듣지 않았다. 둘의 숨소리만 차 안 가득히 흐른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가운데 따님의 숙제를 돌봐주지도 못해 속상해하던 차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한참 놀다 지쳐 잠든 둘을 본다.
우리 집 소녀와 고양이. 평온함 가운데 나의 마음과 몸도 평안해지길.
냥뻗음, 앞뒤다리 베개에 올려주는 셴스
조용히 낮에 찍었던 누리의 사진들을 꺼내보다 이내 아까 상황들이 생각나 웃게 된다.
누리야! 부르니 처음엔 발만, 꼬리만, 그러더니 얼굴도 까꿍 해주는 센스에 마냥 행복감이 벅차오른다.
비싼 아가냥 누리 귀여운 손과 꼬리만 보여줌
와~~!내가 너로 인해 행복해 미칠 지경!
내밀까 말까? 까꿍냥♡
나의 살인 윙크를 보았는가
셋이 있을 땐 대화도 잘 없던 우리 가족 사이에 느닷없이 어느 날 찾아와 매일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행복을 선사하는 누리야 오늘도 감사해. 너로 인해 힘내고 나도 시작되는 치료들 잘 이겨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