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밖에 이렇게 꽃이 피었네

어둠 속에 있어 봄꽃이 만개한지도 몰랐네

방사선 치료가 시작될 부분에 선이 그려졌다.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에 의해 내 몸이 미술 스케치북이 된 듯.

내 몸을 보고 특히 여성이라면 소중한 부분을 누군가에게 보이며 내 몸에 이렇게 그릴 지 저렇게 그릴 지 그려나가는  지켜보고 온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은.....


수술 때도 부분을 그렸으나 방사선 치료를 위해

CT를 찍어가며 내 몸에 그려내는 게.....

썩 유쾌할 수만은 없다.


팔을 뒤로 넘겨보라는 데 수술 한 지 한 달째 재활치료 전이라 잘 안 넘겨진다. 그래도 틈틈이 누리 딸랑이 흔들어주느라 스트레칭했던 게 겨우 방사선 치료를 할 수 있게 될 정도로 팔이 넘어간다.

내 앞사람은 팔이 뻗어지지 않아서 방사선치료가 미뤄졌다. 그나마 나는 다행인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내 몸을 보이고 선 그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작은 희망이었던 건가.
잊지 말자. 오늘을......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진작 오늘 그린다 했으면 4-6주 방사선 치료 때문에 내 몸의 선들이 지워지지 않도록

지켜야 했다면 수술 때문에 었던 때라도

빡빡 밀고 올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다시 이런 못 씻는 날들이 오지 않도록.

내 본모습 그대로 내가 보는 것이 아닌 환자로

다른 이들이 내 몸을 보도록 허용해야 하는

상황들이 다시 온다면 그때는

정말 신과 만나는 시점이 왔다는 뜻이겠지.

저승사자가 대기 중이라는 거겠지.


담당의께서 출근했다니까 출근이 돼요? 괜찮아요? 하신다. 그냥 무언의 쓴 미소 한번 날린다.

안 괜찮지. 여기저기 통증이 넘쳐나지.

그럼에도 출근했다.


기다린 사람들은 당연히 일을 넘기고 싶을 것이고 내가 너무 참고 아픈 티를 안 냈나 싶었다.

차마 방사선치료를 한다는 얘기를 못했으니 상황을 모르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독설을 쏟아내는 지휘관이나 일거리들을 슬슬 넘기는 사람이나

내 걱정은 안중에 없다. 사람이 수술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진급 뭐 소용 있냐고 그러면서 정작 본인께서는 계급장 하나 더 달기 위해 아픈 거 숨기면서 그 자리에 있는 괴리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쓰임을 다했고 망가졌으면 나가야 하는 게 군 맞다. 위로와 응원해 주는 척 가식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위로금 따위 필요 없다.

언제부터 위로를 했는지 저런 위로 필요 없다.


아프니까 복지와 배려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갖다 버린 강하지 않은 자는

기로 내쳐지는 게 '한 *군 선진 *군' 꼭 맞다.

화가 나려 from 하하핫 스튜디오 이모티콘

다시 한번 느꼈다.

믿음이 깨져 배신으로 승화되는 시기는

한순간이라는 것.

한 솥밥을 먹고 지냈으니 좀 더 건강해질 때까지

기다려 줄 거라 믿었지.


오늘 발검무적님의 글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던

멍청한 군주]에 대한 얘기에서 내가 믿었던 것들이 그냥 던지면 다른 면이 될 수도 있는 그냥 동전이었다는 것,  단순한 능력만으로는 이 세상은 살아남을 수 없는 냉정한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것,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고 애써도 정치적 싸움에서 밀리면 이 집단에서도 온갖 가지 연들을

묶어 지들끼리 돌돌 말아 끼리끼리 굴러가는

꼴 사나운 모양을 드러낸다.

마치 먼지뭉치처럼

먼저뭉치 from 인터넷 이미지

오늘 글들은 과한 표현들도 많다.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스스로를 위로를 하기 때문에 오늘은 피를 토하듯 적은 것들도

부끄럽지만 있다.


이런 심정을 그래도 믿을 만한 전우에게

얘기했더니 위로 같은 장황한 말보다는

사진 몇 장 툭 날려준다.

꽃이 피었다. 밖도 보면서 햇빛도 좀 받으라는.

그렇게 어둡게 지내지 말란다.


어둠 속에 지내서

아직 봄이 와서 꽃이 만개한 지 몰랐다.


암 환자는 몸에 난 상처들과 후유증도 남지만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상처들이 더 오래 남는 것

같다. 제 시작인데 다시 강하고 담대하게.

모든 암 환우들 파이팅!!!



#암 #봄 #꽃 #복지제로

#위로 #응원 #햇살 #봄날

#에벤에셀 #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너를 보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