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를 겁쟁이로 만든다.

2023.3.21 퍼스에서

by 슈잉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비슷하듯이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스타일도 모두 비슷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첫 해외여행은 두려울 수 있으나, 한번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계속해서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고. 해외여행도 많이 해본 사람들이 계속해서 원하게 된다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초콜릿의 달콤한 맛을 본 아이가 계속해서 초콜릿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도 많은 여행을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한 가족여행으로, 어학연수로, 교환학생으로, 여행으로 그리고 워홀로. 나이가 많지 않지만 내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보다 많은 국가를 여행했다는 것은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워킹홀리데이로 서호주의 최대 도시인 Perth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내가 깨달은 건, 여행을 할수록 나는 겁쟁이가 된다는 것이다.


22살이 되어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여행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23살이 되어 호주에 와서 찾게 된 감정이다. 호주라는 나라에 일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권태로운 일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특별함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낄 때마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는 했는데, 문뜩 더 이상 나는 여행이 하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더 이상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더 이상 혼자서 여행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호주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많은 감정 중 가장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무력감'과 '외로움'이었다.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가 모국어인 이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과, 나를 아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이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그 외로움이 나를 정말 미치게 만들었다.


Perth로 이사오기 전, 나는 Sydney에서 3달 반을 머물렀다. 물론 시드니에서도 이와 같은 외로움을 겪었다. 당연하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호주에 나 혼자 왔으니. 하지만 시드니에서는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많았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와 같이 워킹홀리데이를 온 사람이든, 이곳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나도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그들과 친구가 되며 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퍼스는 아니다. 시드니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그러한 커뮤니티가 잘 조성되어 있지 않아서 어디서 내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지 단서가 하나도 없다. 이 도시에 살았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운 좋게' 친구를 만드는 게 이곳에서의 최고의 방법이라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다.


도시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나도 안다. 내가 일하는 환경이 달랐더라면, 내가 다른 분위기의 쉐어하우스에서 살았다면, 내가 좀 더 좋은 타이밍에 이사를 왔더라면, 내가 좀 더 운이 좋았다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는지 나는 퍼스에서 정말 이러다가 우울증에 걸리겠다 싶을 정도의 외로움을 느꼈다.


이러한 혼자만의 생활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인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일이 없는 주말에 나 혼자 오늘은 또 혼자서 무얼 하고 놀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게 내게는 큰 고역이었다. 이런 외로움에 적응하고 싶지도 않았고 겨우 이런 외로움에 잠복되고 싶지도 않았다.


유럽여행을 할 때에도 혼자서 여행한 날들이 많았다. 새로운 도시에 가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새로운 문화를 느끼느라 바쁜 그 나날들에는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었다. 물론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내가 느낀 외로움은 나를 3일 동안 펑펑 울게 만들었고,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느낀 외로움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다. 이런 외로움을 한번 느끼고 나니, 더 이상 혼자 하는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아니, 혼자 하는 모든 것이 두려워지고 있다. 여행이든, 유학이든, 나 혼자 새로운 지역에 가게 된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내가 얼마만큼 힘들 수 있는지를 이미 겪어본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에 하나의 장벽이 생겨버린 것이다.


유명한 여행 유튜버인 빠니보틀은 과거에는 혼자서 여러 국가들을 여행하는 영상을 주로 찍어왔지만, 최근의 콘텐츠들은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들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SNS를 통해 빠니보틀의 이런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댓글을 단 사람 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그만의 재미가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초반의 빠니보틀처럼 현지인을 만나서 현지 스타일로 살아보는 것도, 새로운 오지를 가보는 것도 다 즐거운 일이고 하나의 여행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순간들을 즐기고 혼자 여행하는 것의 외로움을 깨닫고 난 후에, 결국에는 나와 같은 언어로 이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 나는 그 혼자 여행하는 것의 외로움을 깨닫고 이 모든 여정을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가고 싶은 나라들이, 탐험해보고 싶은 지역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이제 어떠한 여행도 계획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 내 여행에는 좋은 기억들이 많다. 우연히 산 오렌지 주스가 너무 맛있어서, 지나가는 현지인들이 내가 웃으면서 인사해 줘서, 나도 그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대답해 줄 수 있어서, 우연히 일어난 운 좋은 일에, 호스텔에서 만난 좋은 친구들과 보낸 재미있었던 밤이 그 모든 기억들이 찬란하게 내 여행을 채우고 있다.


내가 여행에서 느낀 감정은 분명히 외로움보다 행복이 더 크지만 그 외로움 때문에 내가 여행을 망설이게 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모른다. 이러한 감정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여행은 일반적으로 좋은 기억들로 모든 사람들에게 생각되고, 여행 유튜버들 역시 여행의 좋은 점과 행복했던 기억들을 그들의 카메라에 담지 슬펐던 순간을 담지는 않는다. 표현되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겪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를 분명히 극복해 낼 것이다. 스스로가 더 강해지든, 나와 비슷한 여행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되든, 어떤 방법으로든 나는 다시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여행을 위해 얼마나의 시간이 필요할지, 다시 혼자 여행하게 된다면 그 외로움을 덮기 위해 얼마나 큰 행복이 필요할지는 지켜봐야만 알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2살,저 세상 너머로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