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가을빛이 물든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바람마저 조용히 속삭인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 사이로 종소리가 은은히 번지고, 오래된 성당의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길가에 흩어진 낙엽은 발끝에 닿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 소리조차 이곳의 고요함에 녹아든다.
그 길 끝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성지가 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오래전 이곳을 찾았던 이들의 숨결이 아직 머물러 있는 듯하다.
소란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는 곳, 바로 안성의 미리내성지다. 이곳에서는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그 느림 속에서 비로소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깊숙한 언덕에 자리한 미리내성지는 ‘은하수’라는 뜻의 이름처럼 맑고 고요한 빛을 품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19세기 천주교 박해 시절, 신자들이 숨어들어 살던 교우촌에서 비롯됐다.
밤마다 집집마다 켜진 불빛이 냇물에 반사되어 달빛과 어우러지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마치 하늘의 은하수 같다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이곳은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성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와, 그에게 사제품을 준 페레올 주교, 그리고 그의 시신을 안장한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함께 자리해 있다.
신앙의 역사와 숭고한 희생이 깃든 공간이지만, 이 계절의 미리내는 그저 무겁기만 한 곳이 아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잎과 청동빛 조각상이 어우러지며 한 폭의 가을 풍경화를 완성한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저작권자명 유니에스아이엔씨)
성지의 중심에는 103위 성인의 시성을 기념해 세워진 대성전이 있다. 성전 뒤편으로 이어지는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 예수가 고통과 희생을 겪은 과정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 15점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가을 햇살이 비추는 오후 시간대에는 붉은 단풍잎 사이로 비치는 빛이 조각상에 닿아, 마치 그 순간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이 모셔진 미리내 성당, 성모 성당, 그리고 바위를 자연 그대로 살린 게쎄마니 동산까지 둘러보는 데에는 약 두세 시간이 걸린다.
걷는 내내 들리는 건 새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어느 방문객은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인데, 이곳에 오면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조용하다”고 전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저작권자명 유니에스아이엔씨)
미리내성지는 서울에서 차로 약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붐비는 관광지가 아닌 만큼, 조용히 걷고 생각을 정리하기에 제격이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고, 완만한 언덕길이라 부모님과 함께 산책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초 사이에는 특히 성지 곳곳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사진을 남기려는 이들의 발길이 잦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기 안성 미리내성지, 저작권자명 유니에스아이엔씨)
성지를 다 둘러본 뒤에는 인근의 작은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운을 즐기는 이들도 많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을의 공기마저 따뜻하게 느껴진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기도하듯 걷기 좋은 곳”, “붉은 단풍 아래에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성지”라고.
가을의 문턱에서 조용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미리내성지의 길 위를 걸어보자. 붉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잠시 잊고 있던 마음의 평화가 천천히 내려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