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선생님

by Jin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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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서 나는 ‘가족 공동체’를 다시 배웠다.


홈스쿨링 환경에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감정 표현이나 의사 표현이 서툴러 자주 불협화음을 낸다.


두어 살 많아도, 두어 살 어려도
서로 다투는 일은 흔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까이서 본 ‘엄마 선생님’들은
“큰 아이니까 동생에게 양보해야지”라거나
“어린아이니까 봐줘야지” 같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장난감이 누구 것인지,
누가 먼저 사용하고 있었는지에 따라
그 아이가 가져야 할 권리를 조용히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주 간단히 설명했다.


아이의 표정에서
“아, 이해했구나” 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만약 아이가 엄마 선생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묵묵부답으로 있으면,
다급하게 다그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생각할 시간을 주며
아무 감정의 표현 없이
엄마도 그 자리에 함께 머물렀다.


그 시간이 때로는 짧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조금 지난 뒤
한 번 더 간결하게 말해 주고
또 기다렸다.


이런 태도를 처음 가까이서 목격했을 때
나는 내 성급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엄마 선생님들이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는 방식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명의 자녀가 함께 식사할 때,
각자 식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음식을 접시에 담아 주었다.

골고루 다 먹는 아이,
밥을 좋아하는 아이,
빵만 먹는 아이,
육류를 좋아하는 아이.


나는 어릴 때
여러 형제가 같은 음식을 먹었고
나이에 따라 양만 달랐기에
이런 방식이 꽤 신선했다.


미국 엄마들은
식탁에서도 개별성을 존중해 주는구나 싶었다.


나라면
채소를 안 먹는 아이에게
몸에 좋고 필요하다고 적극 설득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알레르기가 있어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그래서 학교에서도
집에서 만든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식당에 가도 주문할 때
“이건 빼 주세요, 저건 넣어 주세요” 하며
질문이 오가는 것도
처음엔 번거롭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그럴 만하다고 설득이 된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한 명이었고
마침 설렁탕을 좋아해서
아이에게도 어른과 똑같이
한 그릇씩 1인분을 주문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우리는 꽤 한국 부모다웠다.
셋이서 가끔 그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홈스쿨 환경 속에서
나는 ‘가족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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