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 살던 우리 아이는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큰 명절뿐 아니라
어떤 해에는 5월 어머니날에도 나를 찾아왔다.
이곳은 어머니 날은 5월 두 번째 일요일
아버지 날은 6월 세 번째 일요일 날이다.
함께 식사를 하고
공원을 걸으며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
그 시간들은 지금도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넓은 미국 땅에서
거리에 따라 한 두 시간, 때로는 세 시간의 시차를 넘으며
미국의 자녀들이
명절과 부모의 아픈 소식을 듣고
비행기를 타고, 차를 몰아 부모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속에서
또따른 형태의 효를 느꼈다.
“My parents are my rock.”
힘들 때마다 돌아가 기대게 되는
단단한 바위 같은 분들에 대한 마음은
한국에서는 말하는
부모의 산 같고 바다 같은 은혜와
결코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아이가
아름다운 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엽서 한 장을 보내왔다.
나이 든 부유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던 그 멋진 곳에서
아이는 이렇게 적어 보냈다.
“다음에 엄마와 꼭 같이 오고 싶어.”
그 짧은 문장을 읽으며
나는 한참 울먹했다.
그 고마운 마음과 함께
이미 세상을 떠나신 나의 부모님께
가까이 살지 못해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미안함과 그리움이
함께 밀려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성공’이라는 결과를 헌정하려면
어쩌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의 삶 속에 ‘나’를,
나의 삶 속에 ‘부모’를
서로 초대하며
가능한 한 가까이 살고
일상의 시간을 자주 갖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효의 본질은 결국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가족,
부모,
아들,
딸.
애틋한 존중과 사랑이 머무는 자리.
그날 아이가 보내온
엽서 한 장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