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도시락을 가져갔어.”
고등학교 첫날이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다.
새로운 학교로 가는 첫날이라
나도 괜히 마음이 긴장되었다.
아이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날 아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말했다.
“누가 내 도시락을 가져갔어.”
나는 점심을 못 먹었을 아이가 먼저 걱정되어
“그럼 오늘 점심 못 먹었겠네.” 하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만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훔쳐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도시락을 잃어버린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엄마의 수고를 먼저 생각해 준 마음 때문이었다.
이 지역 공립학교에는 한국 학생이 많지 않았다.
부모로서 나는 늘 마음 한편이 조심스러웠다.
혹시 외롭지는 않을까, 혹시 마음 다칠 일은 없을까.
그 후 얼마 지나 아이는 점심시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에서는 대개 비슷한 문화나 언어를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앉는다고 했다.
한국 학생은 한국 학생끼리, 알메니안은 알메니안끼리, 다른 학생들은 또 그들끼리.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밥을 먹는 시간은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니
익숙한 음식과 언어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는 말했다.
“나는 그냥 돌아가면서 먹어.
이 그룹에도 앉고 저 그룹에도 앉고.”
다른 아이들이 왜 자기들끼리만 앉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나눌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기 전날 밤이었다.
그날 우리 아이는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집 앞 계단에
아이들이 열댓 명이나 앉아 있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저마다 다른 뿌리를 가진 친구들이었다.
다음 날 대학으로 떠나는 아이를 배웅하기 위해
우리 아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렇게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학교 첫날 도시락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늘 조심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이는 어느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도시락을 잃어버린 그날 이후,
아이는 점심시간에
조금 더 넓은 식탁을
스스로만 만들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