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한 날

by Jin Sora
Brand Park School 2.jpg


초보 엄마의 생각은 단순했다.
오로지 아이에게 가장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열정에서
모든 선택이 시작되었다.


프리스쿨은 집 가까운 곳에서 다녔지만,
정식 유치원부터는 제대로 된 학교에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립학교 중에서도
불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는 학교에 입학시켰다.
내가 한국에서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으니,
아이도 두 개의 언어를 쓰는 환경에서 공부하면
서양의 문물을 잘 익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몇 달쯤 지났을 때,
선생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모 중 누군가 집에서 불어를 사용하느냐고.


그렇지 않다면
아이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연에서 배우고,
환경에서 배운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우리 아이가 그동안 왜 조금 덜 활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학교를 옮겼다.


이번에는 이 지역에서
꽤 평판이 좋은 또 다른 사립학교였다.
아이가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다시 학교를 옮겨야 했다.


이유는 아이가 수업 시간마다
나서서 선생님처럼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었다.
교실 밖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벌칙이었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자,
나는 다시 돌아보지 않고
학교를 바꾸기로 했다.


뒤늦게 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유를 묻고, 사과를 했고,
다른 학부모들까지 나서
자기 아이들은 이 학교에서
만족스러운 교육을 받고 있다며
다시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모든 말을 지나쳐
하나의 대안을 택했다.


집에서 세 블록쯤 걸어가면 닿는
공립학교였다.


그렇게 세 개의 학교를 거치며
아이는 유치원을 졸업했고,
같은 학교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했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무난해 보였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
한 달쯤 지나자
아이의 불평이 이어졌다.
옆자리 아이가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을
계속 선생님에게
일러바친다는 것이었다.


짝을 두 번 바꿔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직접 학교에 가서 보고 돌아온 날,
집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학교 그만두고,
엄마랑 집에서 공부할래?”


아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Yes.”


그날로 우리는
홈스쿨을 선택했다.


지역 홈스쿨 그룹에 합류하고,
홈스쿨 담당 선생님을 만나고,
커리큘럼을 고르고,
교과서를 주문했다.
특별활동 지원비 사용 계획까지 세우다 보니
엄마 선생님의 일정은
갑자기 빽빽해졌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엄마는
그 모임에서 나 혼자였다.
용감했고,
동시에 실험적이었다.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 속에서,
나는 조금은 비장한 자신감으로
아이의 성장에
동행하기로 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우리가 택한 길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어느 길이 더 나았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때 함께했던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선택해
지금은 성숙한 사회인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아이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