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할 거 없을 때 가볍게 극장에 들러서 보기 좋은 영화이고 두 번째는 시간을 일부러 내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을 때 전자에 속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할 짓 없이 팬티에 손 넣고 벅벅 긁으면서 때울 시간에 보러 가면 딱이겠다 싶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영화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은 벤 삼촌이 죽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더 배트맨>에서도 브루스의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숱하게 많은 스파이더맨과 배트맨 시리즈를 봐 온 우리는 저 사건을 이미 질리도록 많이 봤습니다. 벤 삼촌이 죽어가면서 구구절절 읊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대사를 가슴속에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덜어내고 다른 묘사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이 영화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거든요. 끔찍한 역사를, 전두광이라는 인물을.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인물에게 힘을 싣고 초점을 맞췄습니다. 바로 수경사령관 이태신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허구의 힘
실제 역사를 스크린 위로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겠지만, 보통 역사를 다루는 매체에서는 창작자의 시선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 시선을 쫓다 보면 결국 창작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죠. <서울의 봄>에선 이태신이 그러합니다. 감독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하고 싶은 말 모두 이태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실제의 역사에는 없던 현실을 써 내려가는 것 역시 그입니다. 이태신은 감독의 '펜'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패자의 역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패자들은 이미 다 죽어서 기록할 겨를이 없는걸요. 우리는 이미 '승자의 기록'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다른 걸 보여주죠. 그것은 다름 아닌 '패자의 역사'였습니다. 기록은 주관적이지만 역사는 절대적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역사'는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전두광의 만행은 다소 담백하게 그려지고 반대로 이태신의 행적은 영웅적으로 묘사됩니다. 술자리에서 혼자만 계속 이상함을 느끼는 장면이라던가, 단신으로 2 공수여단을 돌려보내는 장면, 8 공수단장을 설득하는 장면, 그리고 아내의 머플러까지. 감정을 솟구치게 만드는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영화는 객관적인 기록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 장면들이 가진 힘은 하나하나가 강력합니다. 누군가는 신파라고 하고, 누군가는 국뽕이라고 이 감정을 폄하할지라도 그날, 그 자리에서 그들이 맞서 싸웠음은 틀림없는 '역사'입니다. 쓰여지지 못한 패배자의 역사는 영웅의 기록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빛
전두광은 강렬한 빛을 뒤에 업고 등장합니다. 영화 내내 가장 강력한 조명을 받는 건 전두광입니다. 공교롭게 이름에도 '광'이 들어가네요. 아, 대머리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근데 대머리라 더 번쩍거리긴 합니다. 이거 노린 건가?
아무튼 그는 후광을 업고 있거나 어두운 공간 속에서 가장 강력한 빛을 독점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빛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뿜는 빛이 반사된 거울 속에는 어두운 욕망이 비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에 이태신은 빛을 잘 받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주로 어두운 공간에 홀로 고립되어 있거나, 그림자에 가려집니다. 그나마 빛이 많은 곳에선 은은한 측광만이 잔잔하게 그를 비춥니다.
그런 이태신이 가장 강한 빛을 받는 장면은 두 개입니다. 첫 번째는 2 공수여단을 홀로 막아서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마지막 대치 상황에서 바리케이트를 넘어 전두광과 마주했을 때입니다.
시대의 빛을 받지 못한 이태신은 허구의 두 장면에서만 강력한 빛을 맞이합니다. 그의 안타까운 운명이자, 감독이 그에게 뒤늦게나마 비추고 싶어 했던 영광의 빛이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고름
김의성 아저씨는 정말 어쩌려고 이런 역을 마다하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배우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로 국방 장관 오국상이라는 인물은 깊은 분노를 일게 만듭니다. 참모 차장 민성배도 뒤쳐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진압군 측뿐만 아니라 반란군 측 인물들 역시 전두광을 제외하곤 모두 무능한 쓰레기들로 묘사됩니다. 물론 실제와는 다른 이 영화만의 해석이겠지만 부풀어진 과장 속에서 우리는 핵심을 짚어내야 합니다. 이 영화는 이 안타까운 비극의 원인을 전두광이 휘두른 칼날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건 피부 밑에서 터진 채 조용히 썩어가고 있던 고름들이었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기 마련이지만 이미 썩어 문드러진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습니다. 더 나쁜 악당이 누구였는지를 영화는 조명합니다. 다만 조금 더 담백하게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출처: 네이버 영화
진짜 군인
이 영화가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가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바로 '진짜 군인은 누구인가'입니다.
이 대목에선 우리의 안준호 일병이 함께 하는데요. 저는 정해인 배우가 등장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특별출연으로 나오는 걸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소령 마크를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 영화는 어쩌면 불쌍한 안준호 일병의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헤헤...소령이다 소령..." 거리면서 꿈을 꾸지만 현실은 "일...일병 안준호!"하고 관등성명을 대면서 일어나 내 입 안의 짠맛이 지금 흐르는 눈물인지 황장수가 던진 새우깡인지, 아니면 인생의 짠맛인지 고뇌하며 얼차려를 받을 운명이겠죠. 모두 안준호를 위해 묵념합시다.
출처: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 1
개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영화의 말미, 반란군 세력에게 육본을 점령당한 진압군은 짙어진 패색을 반전시키지 못하고 하나 둘 제압당하고 맙니다. 특수전사령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소장은 정해인 배우가 분한 오진호 소령에게 몸을 피하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지휘관과 함께 싸우다 장렬히 전사합니다.
이때 진압군 측에는 오진호 소령의 친구이자 선배인 군인이 있었습니다. 가족끼리도 친한 오진호 소령을 체포하기 꺼려하는 그를 향해 김성오 배우가 분한 김창세 준장은 말합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어. 우리는 그냥 명령에 복종할 뿐이야.
명령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군인정신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처음에 이 에피소드가 사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찾아보니 이 둘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났던 실화이더군요.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의 오만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족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감히 일반인이 상상조차 못 할 만큼 용맹한 사내의 진정한 군인정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명령에 그저 복종할 뿐인 군인과, 자신이 쫓는 정의에 충성하는 군인. 어느 쪽이 더 '진짜 군인' 같나요?
출처: 네이버 영화
기나긴 겨울
좋은 영화입니다. 각본도 좋았고, 감독이 감독인지라 화면의 스타일도 굉장히 세련됐습니다. 자세히 얘기는 안 했습니다만 이태신이 마지막에 겹겹이 세워진 바리케이트들을 넘어 전두광에게 일침을 가하는 장면 역시 구성이 좋습니다. 그는 영화 내내 다양한 바리케이트들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했잖아요? 켜켜이 쌓인 벽들을 넘어 시대의 빛을 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정우성 배우는 이번 이태신 역이 하나의 인생 캐릭터로 남을 것 같네요.
역사는 그날 밤 그들의 이야기를 패배자의 역사로 남겼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를 써 나아가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될 겁니다. 흉이 진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너무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들의 겨울이 있었기에 우리의 서울은 지금 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