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리뷰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여러분은 이 영화가 개봉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요즘 이 영화의 평을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문장이 ‘개봉한 줄도 몰랐다’입니다. 마블의 위상이 이렇게나 추락했습니다 여러분. 예전엔 티저 예고편만 나와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개봉일을 고대하며 전작들을 정주행 했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요즘은 마블 영화 얘기하면 ‘그거 아직도 해?’라는 반응입니다. 마블은 더 이상 인싸픽이 아닙니다. 그러니 인싸가 되고 싶으시면 여러분은 그냥 <주술회전>이나 보세요.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나쁜 건 티켓 값입니다. 영화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최근에 봤던 마블 영화가 뭐였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되짚어보고 싶었단 이야기죠. 그만큼 이번 영화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다시 마블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끝과 시작
<데드풀과 울버린> 리뷰를 하며 이렇게 말했었죠. 앤드게임 이후로 마블은 기나긴 커튼콜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사실 그 사이에도 새로운 출발을 시사하는 영화들은 많았습니다. <블랙 팬서 2>, <앤트맨 3>, <샹치>, 그리고 <더 마블스>까지요. 하지만 위 4개의 영화를 보며 엔드 게임 이후 새로운 마블의 행보가 궁금해진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인물을 구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진짜로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인 거죠.
캡틴 아메리카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는 MCU의 상징적인 히어로가 되었습니다. 태생부터 슈퍼스타였던 아이언맨에 비해 언더독이었던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는 견고한 빌드업이 쌓여 말미에는 아이언맨과 함께 MCU를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캡틴을 다른 인물로 교체한다? 당연히 반발이 생길 겁니다. 간단히 말해볼까요? 여러분은 새엄마 새아빠를 한 번에 인정할 수 있습니까? 새엄마 새아빠가 가정에 녹아드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겠죠. 이번 영화는 그 ‘노력’에 대한 영화입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업그레이드
일단 장비가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혈청을 맞지 않았으니 장비빨이라도 있어야죠. 일단 방패 생겼고요, 날개는 비브라늄에 충격 방출 기능도 생기고, 드론도 생겼습니다. 팔콘+캡틴 아메리카+아이언맨+블랙 팬서입니다. 김밥천국맨이 됐어요. 저는 그 드라마 안 봤거든요. 제 기억 속 마지막 팔콘은 엔드게임에서 방패 받는 거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김밥천국맨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시작할 때 확 짜쳤습니다.
고뇌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바로 ‘고뇌’ 때문입니다. 현재 마블의 세대교체 캐릭터들이 외면받는 이유는 자꾸 날로 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녀석들이 자꾸 지가 넥스트 아이언맨이다, 넥스트 헐크다 우기는데 솔직히 눈꼴사납잖아요? 하지만 이번 캡틴은 세대교체 캐릭터 중에 유일하게 고뇌합니다.
내가 과연 캡틴 아메리카가 될 수 있을까?
현 캡틴의 매력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날로 먹는 게 아니라 정당하게 계승하려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맞는 인물인지 끊임없이 고뇌합니다. 이미 세상은 그를 ‘캡틴’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합니다. 내가 이 방패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액션
히어로의 매력을 가장 크게 피력할 수 있는 수단은 역시 액션이겠죠. 스티브 로저스를 갖다 놔도 액션이 더 마블스면 그냥 망하는 거거든요. 중반부까진 저도 시큰둥했습니다. 늘 먹던 그 맛있으니까요. 근데 중반부 해상 활공 액션신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마블 영화를 보며 순수하게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내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던 그때 그 시절처럼요. 콩깍지가 씌워졌습니다. 김밥천국맨이 이젠 캡틴 아메리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중반부 액션씬이 좋았기에 후반 액션씬의 때깔이 아쉬웠습니다. 셀레스티얼 섬이 아예 최종전의 무대였다면 더 멋진 그림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습니다.
레드 헐크
포스터에 대문짝만 하게 박아놨길래 분량이 많은 줄 알았는데 겨우 5분 나왔더군요. 변신 직후 백악관 부술 때는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옛날 헐크 느낌이 나서 좋았습니다. 근데 캡틴과 일대일 일기토 장면은 많이 아쉽습니다. 너무나 클리셰적인 해결법으로 뻔하게 마무리 지은 것도 많이 아쉽고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로스’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충분히 구축했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어벤저스에 참여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신세계
이건 딴 얘기인데요. 왜 부제가 ’ 브레이브 뉴 월드‘ 인가요? 브레이브 뉴 월드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SF 소설설로 일컬어지는 <멋진 신세계>의 영제거든요. 소설의 내용과 주제의식은 귀찮으니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일단 전혀 관련이 없다는 거예요. 왜 부제가 이렇게 붙었는지 아는 분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믿음, 그리고 희망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서 2대 캡틴을 수식하는 단어는 무엇이냐. 바로 ‘희망’입니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히어로인 스티브 로저스와 다르게 샘 윌슨은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혈청을 맞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 초능력은 당연히 없습니다. 굳건한 신념? 그런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력합니다. 방패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나약하지만 그걸 극복하려 끊임없이 발버둥 칩니다. 가장 인간적인 히어로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스티브 로저스만큼 존재만으로 믿음이 가는 영웅이 아니라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보셨습니까? 스티브 로저스는 올마이트고 샘 윌슨은 미도리야 이즈쿠입니다. 압도적인 힘과 나약한 강함. 둘 다 선대와 후대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네요.
누군가의 영웅
이 영화에서 그는 모두의 희망이 되진 못합니다. 말만 번지르하게 늘어놓고 하는 건 뭐 그닥 없어요. 고뇌만 할 뿐 아직 그가 캡틴 아메리카에 걸맞은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지만 확실한 성공을 하나 거둡니다. 바로 동경입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사이드킥에게만큼은 인정받습니다. 동경하는 영웅으로서 말이죠. 작지만 위대한 출발입니다. 이제 그는 앞으로의 영화들을 통해 더 거대해질 겁니다. 한 명의 동경이 아니라 모두의 동경이 될 때까지요. 이번 영화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마무리
미친 듯이 재밌는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기대를 부르는 영화였다고는 장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MCU는 더 이상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부가 더욱 견고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사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야기의 힘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저는 2대 캡틴 아메리카가 1대 못지않은 멋진 캐릭터로 거듭날 거라는 확신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다음 마블 영화가 기대가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