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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진짜 진짜 진짜 마지막 희망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리뷰

by 소려











마블 붐은 갔냐?

사람들은 더 이상 마블 영화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간간이 나오는 평작 이상의 영화들도 열심히 삽질 중인 드라마 쪽 때문에 같이 비호감으로 찍혀서 평가절하 중이죠. 게다가 엔드 게임이라는 희대의 뽕맛을 보고 난 우리에게 마블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실로 높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위기의 마블을 구해낼 구세주는 언제쯤 나타날까요? 이번엔 진짜 마지막 희망이다!











환상닦이

판타스틱 4 시리즈는 이미 세 번의 실사 영화 시리즈로 제작된 바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출연한 2 연작 시리즈, 그리고 역대 최악의 슈퍼 히어로 영화라는 평을 듣는 리부트 영화. 이 두 시리즈는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아주 옛날에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도 한편 있더군요. 아무튼 마블 최고의 인기 ip 중 하나답게 무구한 실사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크게 성공하진 못했죠.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MCU로 편입됐으니까요. 과연 케빈 파이기는 환상닦이를 제대로 살려냈을까요?

출처: imdb











새로운 출발

우선 마블 역시 현재 비판받고 있는 점들을 제대로 인지한 듯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드라마까지 확장되며 점점 마이너의 영역으로 빠져가는 시리즈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이번엔 아예 다른 우주의 지구를 다룹니다. 기존 세계관은 지구-616,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건 지구-828입니다. 우주가 달라서인지 시작할 때 나오는 MCU 오프닝도 안 나옵니다.

지구-616에 어벤져스가 있다면 지구-828에는 판타스틱 4라는 히어로 집단이 있습니다. 영화는 판타스틱 4와 갤럭투스라는 마블 코믹스 네임드 빌런 간의 대결을 그립니다. ’ 새로운 출발‘이라는 부제답게 우리가 기존에 알던 인물, 세계관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신규 유입 관객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차피 메인 유니버스 편입은 멀티버스 사가인 만큼 편하게 가능하니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는 가족

이 영화는 가족 영화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마블 영화 중에 ’ 가족 영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있으신가요? 저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보기 전부터 너무 가오갤과 느낌이 겹칠까 걱정했습니다만 기우였습니다. 가오갤 쪽이 와일드하고 거친 느낌의 가족이라면 일단 이쪽은 아예 진짜 가족입니다. 와이프도 있고 처남도 있으니까요. 덕분에 가오갤보다 좀 더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유머 코드 역시 패턴이 다르더군요.

출처: 네이버 영화











시민을 지키는 영웅

이 영화는 최근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많이 등한시되던 ’ 시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영웅‘의 면모를 많이 강조했습니다. 최근의 히어로들이 싸우기 위해서 싸우는 느낌이었다면 판타스틱 4는 진짜 시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의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페이크 다큐 영상에서 그러한 점을 많이 강조하고자 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도시에서 시민들을 구해가며 싸우는 히어로들의 모습이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시리즈, 그리고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아주 좋았습니다. 최근 나온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도 그러한 점에서 호평을 받았죠.

출처: 네이버 영화











인간

영화는 후줄근한 차림의 리드 리처드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바닥엔 히어로 코스튬이 널브러져 있죠. 영화는 시작부터 영웅들을 인간의 위치로 내려놓습니다. 그리곤 임신 사실을 확인하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 사실을 더욱 공고히 하죠. 이는 그다음에 묘사되는 TV쇼 장면과 대비됩니다. TV쇼 소개 영상에선 그들은 누구보다도 든든한 도시의 수호자입니다. 영웅과 인간 사이의 간극. 영화는 그 사이를 조명합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리드 리처드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고르자면 주인공인 리드 리처드였습니다. 그는 얼핏 보면 토니 스타크와 비슷한 인물로도 보입니다. 둘 다 천재에 과학자니까요. 게다가 둘은 둘 다 ‘지식의 저주’를 지닌 인물들입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둘은 비슷한 인물로 보일 수 있겠으나 다릅니다. 토니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자존감이 높고 그것을 본인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욕심이 있던 야심가였습니다. 반면에 리드 리처드는 스스로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지식의 힘으로 그 결점을 가리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다른 매력의 인물을 창조해 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배우

캐릭터의 매력을 살린 건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는 얼굴들이 많이 나옵니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페드로 파스칼, 예쁜데 연기까지 잘하는 바네사 커비도 아주 좋았습니다. 두 주연이 탄탄한 기둥처럼 받쳐주니 조연들 역시 돋보였습니다. 조니 스톰의 배우는 처음 본 건가 했는데 <기묘한 이야기>에 나왔더군요. 인상적인 조연으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씽은…. 어디서 많이 뵌 분이네요. 허비가 만든 소스를 찍어 먹어볼 때 ‘커즌!!!!’을 외치며 통을 엎어버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더군요. 우주 자기장을 맞아서 성격이 순해진 걸까요? 무정자증이 이렇게 남자에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출처: 네이버 영화











호로록! 호로록!

MCU에 처음으로 갤럭투스가 등장했습니다. 마블의 네임드 빌런인 만큼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했는데 코믹스 디자인을 최대한 따르는 요즘 마블의 기조답게 코믹스와 거의 흡사한 외형으로 실사화되었습니다. 아, 갤럭투스가 누구냐면 간단히 말해 우주 이국주 누나입니다. 행성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오른손으로 비벼서 한 번에 호로록! 호로록! 먹는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인데요. 꼬붕으로 고려 은단 인간을 하나 데리고 있는데 그놈이 갤럭투스가 먹을 행성을 엄선해서 골라줍니다. 점메추 요정이죠. 문득 저희 회사 과장님이 떠오르네요. 점심시간마다 맛집을 서치 하는 저 역시 실버 서퍼가 아닐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영웅은

영화는 어찌 보면 뻔한 담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물음을 영웅이라는 개념까지 포함시켜 확장시킵니다. 주인공 부부의 아기를 넘겨서 갤럭투스가 지구를 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연히 치러야 하는 희생일까요? 애초에 지구를 지키기 위해 대표로 이들이 희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걸까요? 마치 트롤리 딜레마를 연상시키는 이 도덕적 족쇄가 초능력을 가진 슈퍼 히어로들을 괴롭힙니다. 어쩌면 갤럭투스보다도 더. 그리고 이 영화는 그 딜레마에 대해 아주 해묵은 멋진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 세계를 위해 내 아이를 희생시키는 일은 없겠지만, 내 아이를 위해 이 세계를 희생시키는 일 역시 없을 것이다.

인피니티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는 생명을 거래하지 않는다’라고 했잖아요. 그럼 꼭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누가 해야 하나요? 그게 바로 영웅들이 하는 일인 겁니다. 희생은 선택받은 소수도, 일반적인 다수도 아닌 ‘영웅’들의 몫임을 영화는 강조합니다. 뻔한 말도 멋있게 하면 울림을 줍니다. 최근의 히어로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을 저는 이번 영화에서 느꼈습니다.

출처: imdb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위 문단에서 말한 대사가 나온 수잔 스톰의 연설 이후로 영화는 고개를 자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그렇게 아기 얘기에 과민하게 반응하던 수잔이 실퍼 서퍼의 과거 얘기 듣더니 갑자기 아기를 미끼로 쓰자고 한다? 합리적 일지는 모르겠으나 정서적으로 납득은 잘 가지 않더군요.

리드 리처드의 서사 마무리 역시 아쉬움이 남습니다. 처음 그의 취약함이 드러나는 부분은 갤럭투스를 만나고 돌아왔을 때입니다. 모든 걸은 아는 그가 갤럭투스를 만나고 돌아와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답하죠’ 지식이 나약함을 가리는 유일한 수단이었는데 그 지식마저 소용 없어지는 가대한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결국 어찌어찌 꾀주머니를 굴려 이깁니다. 그게 저 잘났다는 소리 밖에 더 되나요? 지구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것은 수잔의 연설이었습니다. 리드 리처드는 머리를 굴린 것 밖에 없어요. 인물의 취약함이 가장 드러났을 때 그것을 딛고 성장해야 서사가 성립이 되는데 그냥 짠! 하고 해결해 버려서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액션

액션 역시 미묘합니다. 초반 TV쇼에 나오는 액션, 그리도 실버 서퍼로부터 도망칠 때의 액션은 아주 좋았습니다. 전자는 깔끔했고, 후자는 인터스텔라가 생각날 정도로 비주얼적으로나 액션의 완성도, 서스펜스에서 모두 훌륭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후반부가 이 모든 장점을 덮어버릴 정도로 별로입니다. 우주에 있을 때 그렇게 무섭던 갤럭투스가 지구로 오니까 갑자기 대갈장군으로 보이는 것도 별로였고, 우주적 존재에 가까운 빌런을 잡는 방법이 겨우 금 밟으면 죽는 오징어 게임인 것도 짜칩니다. 주인공 세력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오버 파워 빌런들을 너프 시키는 건 필연적이지만 그 방식이 너무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담인데 MCU 세계관에선 염력 계열의 에스퍼 초능력의 위력을 너무 올려쳐서 묘사하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아서 저는 별로더군요.

출처: 네이버 영화











마무리

종합적으로 봤을 때 평작에서 범작 정도의 영화였지만 저는 장점들이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 유니버셜스튜디오 식당 같이 생긴 레트로 퓨처 디자인도 아주 괜찮아서 이런 풍으로 시리즈가 계속 나와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가장 고무적인 건 차기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혹은 그 이상의 구심점을 잡아줄 팀이 등장한 것 같아서 기쁘더군요. 리드 리처드는 어벤져스에서 차기 토니 스타크의 자리를 맡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아, 그리고 쿠키 영상. 오랜만에 마블 쿠키 영상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복귀하는 게 처음엔 회의적이었는데 뒷모습 만으로도 이렇게 심장이 뛰게 만드는 걸 보면 제 생각이 틀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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