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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알못이 하는 영화 위키드 리뷰

<위키드> 리뷰

by 소려











1.

저는 영화는 좋아하지만 뮤지컬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 봅니다. 뮤지컬 한번 볼 값이면 극장에서 영화 10편을 볼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끊는다? 그러면 비교가 불가해지죠. 이 비싼 뮤지컬을 사람들은 왜 볼까요? 그것도 같은 작품을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는 이유로 여러 번 보기도 합니다. 다들 돈이 많은 걸까요? 나만 없는 건가요? 아무튼 이런 의문이 드시는 분들이라면 뮤지컬을 꼭 한 번은 관람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

저는 뮤지컬을 딱 한번 봤습니다. 첫 경험이 중요하다며 나름 비싼 자리를 끊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서울에 있는 샤롯데시어터로 갔죠. 이제는 10년도 더 된 기억이라 내용조차 가물가물 합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은 아주 또렷하게 제 기억 속에, 그리고 제 추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오늘 리뷰는 짧지만 강렬했던 제 추억과 함께 해보려 합니다. 아, 그 뮤지컬 이름이 뭐였냐구요?


그 뮤지컬의 이름은 <위키드>였습니다.

출처: wallpaper cave






3.

위키드는 동화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 소설입니다. 근데 팬픽이죠. 팬이 쓴 프리퀄입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착한 남쪽 마녀와 사악한 서쪽 마녀의 과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뮤지컬화가 되었는데 그 작품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됩니다. 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중 하나로 꼽히죠. <겨울왕국>의 엘사 성우 이디나 멘젤을 아십니까? 이디나 멘젤이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의 초연 배우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기 있는 엘파바이기도 하죠. 이디나 멘젤은 엘파바역으로 브로드웨이 스타가 됩니다. 얼마나 위상이 높은 작품인지 조금이나마 체감이 되시나요?

출처: broadway direct






4.

뮤지컬은 영화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매체입니다. 영화로 사랑받는 이야기가 뮤지컬에서 사랑받으리란 보장이 없죠. 물론 반대의 경우 역시 성립합니다.

저는 뮤지컬을 딱 한번 봤지만 영화와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차이점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현장감’입니다. 오디오 믹싱과 편집이 거쳐지지 않은 순수 날것이 주는 경이로움과 쾌감. 그것이 뮤지컬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배우가 연기하는지가, 어떤 배우가 노래를 잘하는지가 팬들 사이에서 중요한 겁니다.

많은 뮤지컬 팬들이 영화 <캣츠>의 실패를 ‘현장감의 부재’로 꼽습니다. 특유의 분위기와 현장감이 가장 큰 무기인 작품인데 영화화되면서 장점들이 모두 희석되었다는 평이죠. 그러면 ‘영화’ <위키드>는 과연 영화라는 매체에 완벽하게 녹아들었을까요?

출처: polygon






5.

영화를 관람하기 전, 두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왜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누었을까?”였고,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영시간이 왜 3시간 가까이 되는 걸까?”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하나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지만 다른 하나는 우려대로 된 것 같았습니다. 차근차근 알아보죠.






6.

저는 긴 영화를 싫어합니다. 2시간 넘는 영화는 시작도 전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법적으로 모든 영화의 시간을 2시간 이내로 제한시키는 법안이 나온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큼 긴 영화를 싫어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죠. 잘 만들면 됩니다. 재밌고 잘 만들었으면 영화가 3시간이 넘든, 4시간이 넘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제가 말하는 건 ‘쓸 때 없이 긴 영화’들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경우에는 애석하게도 후자의 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7.

이 영화는 뮤지컬 넘버 중간중간에 영화적 호흡을 끼워 넣습니다. 객석이 먼 뮤지컬과 다르게 배우의 표정이 잘 보이니 배우의 눈빛도 담고 싶고 호흡도 담고 싶을 겁니다. 또한 뮤지컬을 그대로 옮겨놔 봐야 굳이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으니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연출을 집어넣는 거죠. 그런데 그게 지루합니다. 효과적으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지루한 사족이 더 많았습니다. 좀 더 쳐냈다면 2시간 언저리로 끊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8.

영화를 두 편으로 나눈 선택은 장단점이 둘 다 존재합니다. 먼저 장점은 영화를 ‘defying gravity’ 넘버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단점은 필살기를 이미 써버려 파트 2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defying gravity’는 위키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곡입니다. ‘Popular’도 손꼽히는 넘버이구요. 근데 이걸 다 1편에 갖다 쓴 겁니다. 이번 영화가 끝나는 시점은 원작 뮤지컬의 1막이 끝나는 시점과 동일합니다. 즉, 1막을 파트 1, 2막을 파트 2로 만들었다는 소리죠. 근데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2막의 내용이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유명한 넘버도 없고,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그저 그런 플롯의 이야기를 가지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파트 2는 말하자면 궁 뺀 말파이트입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과연 파트 2는 어떤 영화가 될까요? 기대가 되지만 우려도 됩니다.






9.

영화의 장점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죠.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좋습니다. 특히 아리아나 그란데의 글린다 연기는 너무 찰떡이었어요. 글린다 역을 맡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을 정도로. 얄미우면서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잘 묻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노래는 또 요정처럼 부르고 말이죠. 그나저나 아리아나 그란데 신하균 배우 닮지 않았나요?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는 선방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비교 대상이 이디나 멘젤이다 보니 가창력 측면에서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극 연기는 좋았습니다. 엘파바 자체가 독자적인 개성이 강한 캐릭터가 아님에도 처연함이나 슬픔을 연기에 잘 녹여낸 것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10.

중간중간 등장하는 오마주와 카메오도 재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일단 시작할 때 도로시 일행이 잠깐 모습을 비춥니다. 엘파바가 구해준 겁쟁이 아기 사자는 나중에 도로시와 여행을 하게 되는 그 겁쟁이 사자가 맞고요. 에메랄드 시티에서 펼쳐지는 극중극 연극에 등장하는 두 마녀 역할의 배우는 누군지 눈치채셨나요? 엘파바 초연 배우 이디나 멘젤과 글린다 초연 배우 크리스틴 체노웨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오마주인데요. 중요하니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출처: broadway direct






11.

앞서 말했듯, 너무 오래전 기억이라 뮤지컬의 세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제 추억 속에 살아 숨 쉬는 장면이 무엇이냐? 바로 ‘defying gravity’ 넘버로 마치는 1막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이번 영화에선 원작 뮤지컬의 클라이맥스에 쓰이는 가장 필살기 연출을 하나 오마주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고 마침내 엘파바가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 무대 장치가 점점 높이 솟아오릅니다. 동시에 글린다가 걸쳐준 엘파바의 검은 망토가 무대를 절반을 덮어버릴 만큼 넓게 펼쳐집니다.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와 함께 노래가 절정에 달하면 엘파바의 경이로운 고음과 함께 1막이 끝나죠. 저는 이 무대를 봤을 때의 전율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역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훌륭하게 오마주 되었죠.

저는 이 넘버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몇 시간이었는지도 잊을 만큼, 감동과 전율이 있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제가 이 정도였는데 뮤덕들에겐 얼마나 큰 감동이었을까요? 혹시 재관람 예정이라면 원작 뮤지컬의 해당 넘버 연출을 꼭 한번 보고 가시기 바랍니다. 감동이 복사가 되니까요.

출처: broadway direct






12.

이미 한 매체에서 사랑받은 작품이 다른 매체에서도 똑같은 감동을 준다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 영화가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원작의 감동을 재현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앞은 좀 지루합니다. 근데 지루하고 자시고 간에 일단 보세요. 끝까지 보시면 2시간 동안 참았던 인내의 보상을 아주 확실하게 영화가 쥐어줄 겁니다.

파트 2가 어떻게 나올 지에 따라 이 시리즈의 평가가 정해질 겁니다. 과연 2편으로 나눈 패기가 정답이 될지 아주 기대가 되네요. 저는 더빙으로 한번 더 보러 가겠습니다. 여러분도 꼭 보세요.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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