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의 질은 얼마나 보장되어야 하는가
유럽, 특히 서/북유럽은 근로자의 권리를 중시한다.
이에 따른 서비스 질의 저하와 가격 상승은 유럽인들이 당연시 여기는, 타지의 한국인은 그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2023.11.28
독일 도이치반이 연착됐다. 프라하 여행을 위해 프랑크프루트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탑승 2시간 전 공항에 도착할 예정(아침 8시)이었고, 수하물이 1시간 전에 마감되기 때문에 여유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 4시 기상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DB(도이치반)에 탑승했다.
그렇게 DB는 수하물 마감 1분 전에 우릴 공항에 내려줬다. 물론 비행기는 놓쳤다.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놓쳤다. 도이치반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방심했다. 열차 안에서 미친 듯이 대안을 찾고, 전화하며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 결국 티켓의 30%만 환불받고 상황을 받아들였다.
화가 난 상태로 꾸역꾸역 드레스덴행 비행기표를 끊고, 드레스덴에서 다시 프라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마저도 예상 시간보다 훨씬 늦어졌으니, 여행 당일 독일에 질려버렸다. 다시 끊은 비행기도 독일 비행사였다..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았던 운수 나쁜 날.
다행히 당일 맥주 스파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다음날은 프라하성을 산책하고 양조장에서 낮부터 맥주를 마시며 털어냈다. 맥주를 마시던 중 유물학을 전공하신 연구원분을 만났다. 영국에서 1년간 파견 근무를 하면서 이곳저곳 여행하시던 분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과의 대화여서 신나게 이것저것 경험을 주고받았다. 당연히 DB와 독일의 서비스 시간 약속에 대해 험담도 했다. 연구원께선 허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셨다.
"정말 서비스를 받을 땐 그렇게 화가 나죠. 그런데 또 직접 일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서비스는 별로지만, 정작 자신이 일할 땐 편한 환경. 정치, 인간관계 등 상관없이 온전히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하는 곳이 유럽인 것이다. 역시 장점과 단점은 공존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DB도 서비스 질이 그렇게 안 좋았구나. 지연되고, 취소되어도 친절하지 못한 안내만을 했구나 생각했다.
여행이 끝났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와중에도 DB는 2시간이 연착됐고, 연착으로 계산된 시간보다 1시간 뒤에 도착했다. DB가 연착되는 이유가 궁금해서 인터넷에 쳐봤다. DB의 근무자들은 어떤 복지를 누리고 있길래 이렇게 기차가 지연되는 걸까.
원인은 그냥 시스템의 허술함과 시설 노후였다. 2022년 기준 DB의 정시 도착률은 60%였다. 독일 내에서도 문제가 되어 고치라고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여유고 뭐고, 서비스 제공이 미숙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 배운다.
유럽에 대한 환상이 시스템의 미숙까지 덮어버릴 뻔했다.
아닌 것은 아닌 거다. 근로자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것도 좋지만,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권리도 좀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서비스 구매자는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것을 침해한다면 서비스 제공자는 과연 구매자로부터 지불된 값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DB 시스템 좀 고치자. 시간 약속을 중요시 여기는 국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