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

그리운 사람

by 무연

새로운 근무지로 발령이 나고, 슬슬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할 때쯤, 엄마의 투병생활도 시작되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나는 출근을 했고 일을 하다가 퇴근을 하고 종종 엄마의 병원 스케쥴에 맞춰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항암치료가 시작되고 그 해에 수술까지 마쳤다. 그렇게 모든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해가 바뀌고 항암으로 밋밋해진 머리는 조금씩 성실하게 자라난 곱슬머리로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했다. 이렇게 지내다가 엄마의 곱슬머리가 조금 더 풍성해지고 조금더 길어지면, 그러다가 언젠가는 완치라는 답변을 듣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엄마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며 지내고 있었다.


그날 하늘이 참 맑았다. 출장업무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갈때 바라본 하늘이 티끌없이 선명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길가에서 괜히 아쉬운 마음에 한번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바람도 유난히 시원했다. 그래서 그때 오던 전화도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받았다.

'운전중이니?....놀라지 말고 들어..엄마가 재발하셨대'


그 뒤에 더 많은 말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웅웅 거리는 라디오처럼 아득히 느껴졌다. 그저 엄마의 탐스럽게 곱슬거리던 머리카락만 생각날 뿐이였다. 타고난 곱슬머리는 엄마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내가 봐도 엄마의 곱슬머리는 특별한 손기술 없이도 슥슥 빗어 넘기기만 하면 어느 미용실의 헤어디자이너의 작품처럼 풍요롭게 구불거렸다.

'앞집 누구는 어디서 머리했는데 맘에 안든다고 나한테 어느 미용실에서 했냐고 물어보더라', '엄마가 미용실 안가는 돈으로 반찬도 사고 생활비에도 보태는 거야' 라는 말을 하며 환하게 웃던 모습도 떠올랐다.


다시 진행 될 치료 과정보다는 엄마의 곱슬머리 대신 모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부터 뭔가 타오르는듯 했다.


재발 판정을 받으신 이후 엄마는 미용실에 가지 않으셨다. 처음의 항암치료 때 처럼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정리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하긴 했지만 엄마는 그냥 빠지는대로 두고 싶다고 하셨다. 엄마의 이부자리 머리맡에는 주인 잃은 머리카락이 헤매고 있었다.

그때 엄마는 무슨 마음이였을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병실에만 누워있는 엄마가 늘상 쓰는 모자가 괜히 거슬려서 밝고 아기자기한 무늬가 들어간 모자 여러개를 사놓았다.

그 중 제일 화사한 모자를 먼저 엄마 머리에 쓰여드렸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바람도 쐬야 하니 제법 두꺼운 모자도 준비해야 했다. 찬기운이 가득한 바람이 못내 아쉽기만 했다. 하루 빨리 날이 풀리기를 바랬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병실에서 배웅인사를 받고 나왔을때, 내가 엄마와 눈이 마주쳤었는지 내가 어떤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내가 내가 씌여드린 복사꽃색의 모자만 생각날 뿐이다.

내가 성급히 원했던 봄은 내가 그토록 바랬던 모습 그대로 다가왔지만, 나는 더이상 엄마의 모자를 준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진첩 속 엄마의 웃는 모습과 함께하는 머리카락이 유난히 곱슬거리고 생기롭다.

혹여, 누구든지 마지막으로 향하는 장소가 있다면, 우리 엄마, 못다 기른 머리 맘껏 길러내고 만지는 손길에 따라 풍요롭고 탐스러워지는 그 곱슬머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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