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
5일간의 설 연휴와 함께 오미크론의 여파 때문에 설 연휴가 끝났어도 회사에 출근은 하지 않고 또다시 주말까지 쭉 쉬게 되었다. 그나마 지켜지던 아침 기상시간은 설 연휴 첫날부터 바로 무너졌으며 새벽 4시 취침과
당일 오전 11시 기상을 하게 되었다. 남들은 미라클 모닝이니 아침형 인간이니 하는데, 나는 당일 자서
당일 일어나는 당일형(?) 인간이 된 것이다.
꿀 같은 연휴를 보내고 출근을 하기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당일형 인간에서 벗어나는 게 못내 아쉬웠는지 새벽 2시를 넘기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하는 월요일까지도 당일형 인간이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일상이 그나마 나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틀을 잡아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퇴근을 하는 일상의 틀 속에 자리 잡은 나이기에, 일상의 틀이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균열이 생기면 그 속에 흐물거리고 있는 내가 그 균열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것이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일상이 만들어준 틀이 사라지면 금방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급한 일 하나 없고 남겨둔 일 하나 없어서 이번 연휴만큼은 온전히 내 뜻대로 쉴 수 있는 날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계속 쭈꿀거리고 있었다.
로또나 연금복권에 당첨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당첨되면 생활 패턴에 어긋나도 상관이 없으려나?? 그러면 직장을 그만둬야겠군!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지??
..... 답 없는 생각들이 연달아 떠오른다.
우리가 소위 아침형인간이니, 미라클모닝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그럼과 동시에 예전에 건물주의 일과표라고 떠돌던 것이 생각났다. 오전 10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가족들과 점심 겸 쇼핑을 하고 오후에는 골프를 치고 귀가를 하던 스케줄 표였던 것 같다.
왜 갑자기 나는 이런 생각들이 파묻혀 끝나지 않는 고민들을 갑자기 하고 있는지 웃음이 나왔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과 상상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경우의 수들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어쨌든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늦지 않게 잠드는 생활 습관인 것이다.
어쩔 때는 지겨워서 탈출하고 싶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아침에 눈을 뜨고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틀을 잡아주는 직장생활에 소소한 감사함이 생길 때도 있다.
남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직장 그만두고 싶다는 말과 진로 고민 중이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지만,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삶은 사는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그 틀을 잡아주는 건 지금의 출퇴근을 하는 직장 생활인 것이다.
물론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퇴근하고 싶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출근을 하겠지만, 내가 당일형 인간이 되지 않게 잡아주는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 생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