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주문한 간이 욕조에 온수 방향으로 힘껏 돌린 샤워기를 넣고 물을 채운다.
조그마한 욕실의 사이즈에 맞춰 치수까지 재서 주문했는데, 조금 더 큰 욕조를 주문해도 되었겠다. 크기에 대한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 조그마한 욕조에 샤워기 거치대, 욕조덮개, 사이드 거치대, 목받침이 아주 야무지게 갖춰져 있어 크기의 아쉬움은 금방 사라지고 잘 샀다는 만족감만 남는다.
성질이 급한 나는 샤워기로 채워지는 물의 속도가 마뜩지 않아 냄비 2개와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끓이기 시작한다.
끓인 물들을 손수 채워 넣고 라벤더향의 입욕제를 풀어 넣는다. 급하게 주문한 입욕제인데 제법 맘에 든다. 다음에는 대용량으로 구매해야겠다. 이래저래 준비를 하면 15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나는 양치를 하고 국화차를 우려내고, 재밌는 동영상을 찾기 시작한다. 10분짜리 두 개나 혹은 20분 정도의 영상을 준비하면 딱 맞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면 발끝부터 조심조심 들어간다. 뜨끈한 느낌이 발끝에서 타고 올라온다. 잠시 주저하다가 조금씩 몸을 물에 밀어 넣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두피와 얼굴에서 땀이 몽골몽골 나기 시작한다.
명치 아래까지 차오른 물과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온몸 구석구석 감각을 일깨운다.
지친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는 다던지, 혹은 몸의 부종을 빼준다든지의 반신욕의 효능을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냥 당연하게 무관심 속에 방치했던 내 몸을 그 순간만큼을 살뜰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발뒤꿈치가 화끈한 것이 최근에 신은 운동화가 발에 편한 것은 아녔던걸 알게 되었다.
무리하게 운동하느라 뻐근했던 어깨가 처음보다 부드러워진게 느껴진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물에 잠겨있는 배를 보고는 살이 꽤나 쪘음을 인식하게 된다(웃음).
알맞게 식은 국화차를 마시며, 재밌어 보이는 경주여행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나는 경주를 가본 적이 있었나?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가봤으려나, 왜 기억이 잘 나질 않지, 날이 쫌 풀리면 가볼까?
주말에 야외로 나간 지 꽤 되었구나, 오랜만에 캠핑장 예약 좀 해볼까?
바다도 보러 가고 싶네, 등산도 가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 또는 산 정상에 올라있다.
조그마한 이 공간에서 나는 분주하게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경주여행 영상이 끝날 무렵, 나의 전국 여행도 마무리되어간다. 명치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다시금 눈앞에 들어온다. 뭔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물속에 한껏 집어넣어본다.
오늘은 세종시에 출장이 있어 두 시간 반가량을 운전해서 다녀왔다. 왕복 다섯 시간을 운전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입고 외출한 옷을 겨우 갈아입고 소파에 누워, 남은 오늘 하루의 시간을 보니 아쉬움이 가득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고 싶지 않은데, 어느새 나는 또 욕조에 물을 받고 있다.
뜨끈하게 받아진 물에 오늘 하루 피곤를 녹여낸다.
그래, 이 맛에 반신욕 하는 거지!!
이제야 반신욕의 매력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