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간헐적 단식을 해볼 요량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 겸 집 근처 한 바퀴를 돌았다.
산책 후 조금 출출해져서 냉장고에 빵하나를 꺼내먹었다. 그냥 내가 왜 이러나 싶었다.
소파에 계속 누워 핸드폰을 만지고 티브이를 보면서 뭔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일찍 퇴근했으니 뭔가 운동이라도 해야 할 듯싶고 책이라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고 집이라도 치워볼까 하며 온갖 생각이 무게를 달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생각만 4시간을 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 밀려있는 방송대학교 강의 하나를 틀어본다.
집중이 되질 않는다. 뭐라도 해보자라며 강의를 보는데 이내 딴생각이다.
퇴근부터 현재까지 나의 행동과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아 기분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한다.
왜 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산성에 집착하는 것일까?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붕 뜬 시간에 헤매고 나면 뭔가 내려앉는 느낌이 유쾌하지는 않다.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지만 막상 무언 할 하면 귀찮아하면서 몸살을 앓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괴로워하면서 아주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쉽게 해낼 수 있는 매우 그리고 아주 작은 목표를 설정하여 그것부터 실행하는 행동 교정과 환경설정에 관련된 영상과 책들을 여러 개 보았으나, 당최 나에게는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설정해야 하겠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면 오늘처럼 생각 속에서 표류만 하다가 점점 침체되어 가는 것이다.
식탁 위에 금방 치울 수 있는 접시 하나도 치워지지가 않고, 아침에 벗어놓은 빨래더미도 그 자리 그대로에 있다. 오랜만에 쉽게 읽어지는 책도 빌렸지만 소파 위에 누워 단 한 장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괜찮다고 다독여야 하는데, 살아있는 오늘날까지 비어있는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집착은 쉽게 사라지질 않는다. 이제는 이런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달래 보지만 타고난 천성인지 아니면 반드시 해야 하는 나의 숙제인 것인지 여유 있는 시간 자체를 즐겨보려고 해도 또다시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해야 할 일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워커홀릭도 아니고 부지런하고 깔끔한 것도 아니며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K-직장인인 것이다. 그저 아무거나 하기는 싫은데 뭔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무언가를 해야 할지 몰라서 뭘 해야 하는지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는 답답한 이가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요즘에는 이러한 나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부담 없는 선에서 이것저것 해보자는 마음으로 원데이클래스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문득 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닐까 싶었다. 어떤 것을 할지 찾고 그걸 해내게끔 나를 유도하는 것보다 그 이전에 무언가를 놓친 것이 있는 걸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이렇게 나는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일까?
소소한 거에는 재미와 흥미를 못 느끼면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걸 해내고 싶어 하다가 막상 어려울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주 모순의 끝판왕이 나인 것이다. 아니면 노력대비 그럴싸한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놀부심보일지도.
가끔 가만히 나를 내려놓고 쳐다보면 급한 성질이 한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로는 누적된 시간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내가 시도하려고 할 적에는 책의 마지막페이지의 한문단만 취하고 싶은 것이다.
결과에만 집중해 자꾸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타고난 천성을 누르는 수행을 많이 하지 못하였다.
이럴 땐 결과와 상관없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걸 찾아보려 하는데, 영 찾기가 어렵다.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오늘 하루 별일 없음에 감사하고, 좋은 것만 보려 노력하지만 나의 미성숙한 자아는 아직도 허우적거리며 방황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하려는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맘에 들지 않아서 자꾸 행동으로 맘에 드는 걸 하려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심오한 고찰과 탐색을 한다거나 스스로를 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사무실 복도를 지나치다가 보인 내 옆모습과 볼록 튀어나온 뱃살에 기분이 좋지 않았던 적이 꽤 많이 있었다. 최근 다이어트를 하며 어느 정도 감량은 되었지만 전보다 나아졌을 뿐 아직도 살은 빼야 했다.
나를 부정하거나 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보다 5킬로가 더 빠지면 나를 더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를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금요일부터 저녁부터 시작된 이유 모를 과식과 끊임없이 먹어대는 식욕은 주말이 지나고 이틀이 더 지나서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름 몸에 나쁘지 않은 음식들만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물론 많이 먹으면 좋은 음식이라 한들 살이 찌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따뜻한 물 한잔을 준비해 본다. 어쨌든 내 마음이 편한 게 우선이니 내 마음을 다독여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