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1살 덕분에 환갑이 뒤로 밀렸다. 고맙다 해야 하나, 쓰잘데기 없는 짓 했다고 시비라도 걸어야 하나.
59세나 60세나 뭐가 달라질까마는 환갑이라고 하니 그런가 하며 산다.
나이를 한 살 더한다고 해서 더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괜히 끼일 자리만 하나 더 줄어든 것 같아 쪼금은 억울하다.
나이 환갑에 뒤늦게 심취한 음악이 생겼다.
산도깨비에서 문어의 꿈을 거치더니, 급기야 섬애기, 가을밤 같은 동요에 꽂혀버렸다, 동요.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더니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닐 텐데, 트로트도 아닌 동요에 정서적 공감을 한다는 게....
어쨌든 컴컴하게 불 꺼놓고 다리 펴고 앉아 동요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게 요즘 들어 새롭게 찾은 소소한 행복이다. 의외로 슬프고 애절한 동요도 많다는 게 복병이기는 하지만.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듬뿍듬뿍 듬뿍새 논에서 울고.
북한과 남한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좋아한다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과, 최순애 시인의 '오빠 생각'이다.
두 분의 러브스토리는 노래만큼이나 동화적이다. 마산과 수원에 살던 12살, 15살의 풋풋한 소년 소녀가 7,8년 동안 편지로만 사랑을 키우다, 약속대로 결혼을 한다는 동화 보다 더 동화적인 두 분의 순애보는 노래를 더더욱 아름답게 한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인생이 되었다.
반백의 늙다리가 된 내 삶에는 아름다움보다는 '치열함'만 가득했다. 그래서 동요 속에서 '쉼'을 찾은 건지 모른다.
나이 환갑에 아이처럼 꿈을 꾼다.
고래 아가씨랑 코끼리 아저씨가 첫눈에 반해 조개껍데기 예물 놓고 결혼을 하는 꿈을 꾸고, 깊은 바닷속이 우울해 매일 꿈을 꾸는 문어가 되기도 한다. 뚱뚱한 오빠는 날개가 달렸지만 어떻게 날아다닐지 걱정도 한다.
환갑의 나이에도 나는 아이처럼 꿈을 꾼다. 동요 속을 헤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