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누구 아나?"
고만고만한 동네 뒷골목 양아치와 시비라도 붙으면 열에 아홉은 듣게 되는 말이다.
웬만하면 쌈박질은 피하려는 의도인지, 누구 빽그라운드로 기선 제압을 하려고 날리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모른다'란 대답인즉 투닥거림의 시작이라 보면 틀림없다.
뒷골목 쌩양아치 족보 조사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진부한 레퍼토리다.
"혹시, 00이 아세요?"
대관절 타일 시공하는 거랑 누구 머시기를 알고 자시고가 뭔 관련이 있을까?
현장에서 숫하게 듣는 질문 중의 하나인데, 그 양반을 알고 모르고의 여부가 시공능력의 가늠줄이라도 되는 건지, 아님 본인 인맥을 과시함으로 인생 잘 살았다고 우쭐거리고 싶은 건지 당췌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다.
도제사회도 아니고.
" 어 임마, 내가 느그 서장하고 엊거저께도 같이 밥 묵고, 싸우나도 가고! 그랬어!"
근데, 아이러니하지만 볼쌍사나운 요 딴 장면이 엄연히 통한다는 거다. 그것도 의외로 잘.
"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타짜의 정마담도 이대 나온 여자라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이 희대의 대사로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뽕을 뽑는지, 무명이었던 배우 한 명 야무지게 잘 먹여 살리는 로또번호가 아닌가.
도대체, 느그 아부지 뭐 하는지가 왜 궁금하냔 말이지. 남의 아부지 직업 여하에 따라 처벌이나 판결 내용이 달라지나? 그래도 괜찮은 게 맞는 거야? 설마!
어제 모임에서 그간 대면대면하던 분위기를 바꾸고자 자기소개의 다소 어색한 시간을 가졌다.
순차적으로 소개말이 이어지던 중, 갑자기 장내에 감탄과 선망의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말로만 듣던 '이대 나온 여자'가 등판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만한 아주 유명한 이름 석자. 그의 부인이란다.
'누구의 부인'이란 부재가 달리는 순간 180도 바뀌어버린 아우라에 일순 압도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사람이 바뀐 건 아닌데, 우리의 시선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내 부모는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만 들려도 움찔거렸던 끗발이라곤 1도 없는 소시민이어서, '느그 아부지 머하시노'라고 물으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엉덩이를 돌려대야만 했다. 내 아부지는 어쩌자고 그 흔한 통반장 명함 한번 없이 살았을까. 하다못해 처자식을 봐서라도 산불조심 완장 정도는 찼었어야 했다.
나는, 이대 근처도 못 가봤고, 돈도 개뿔도 없다. 그래서 행여 내 새끼가 대리 직급 달고 산재를 당해 퇴사를 하게 되더라도, 누구나 받는다는 퇴직금 5,000,000,000원은 고사하고 5,000,000원이나 제대로 받아먹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새끼는 그러겠지?
"아부지는,
뭐하는 사람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