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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 군아!"...1

by 김석철



소싯적에는 내 어머니의 이름이, '진해댁'인 줄 알았다. 별명처럼 불리는 택호란 걸 알만한 나이에는, '00 엄마'란 이름으로 바뀌어 불렸다.

사춘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내 어머니 또한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여자'이고, 숨겨진 진짜 이름은 이 삼순이란 사실이 놀랍고 새로웠다.

하지만, 이 삼순이라는 함자는 잊힐만하면 호적등본 같은 서류상의 글자로만 확인이 되었지 여태껏 타인이나 본인의 입으로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차례 또렷이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들은 기억은, 가슴이 답답해 숨이 안 쉬어진다고 명절날 새벽녘에 황급히 병원을 찾은 날이었다. 밤새 뒤척이며 끙끙 앓던 어머니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병원에 가보자는 말에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병원과 돈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였기에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까지 참고 또 참았을 게 분명했다.


정확히는 당사자인 이 삼순 씨는 있으나마나한 엑스트라일 뿐, '이 삼순 씨 보호자 되시는 분'이 호명의 주인공이었다. 어머니는,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뿐이다. 엉덩이를 걷을 때도, 잔뜩 겁먹은 얼굴로 수술실을 들어설 때도 이 삼순 씨는 할머니라고 불렸다. 어머니는 청춘도, 이름 석자도 정작 본인의 것이라고는 없었다.


열아홉 살의 나는 당구장 볼보이로 집에서 멀리 달아났다.

삼각으로 뚫린 계단 밑에서 의자들을 가지런히 붙이고서 허리 구부러진 목각인형처럼 잠이 들고, 주야장천 국물만 희멀건한 라면으로 연명하면서, 열 시부터 다음날 한, 두 시까지 평균 열다섯 시간 이상을 일했다.

라면과 쪽잠, 그리고 노예의 대가로 번 10만 원이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와 곁에서 함께 골병이 들어가는 어머니를 먹여 살렸다.

이 무렵 아버지의 이름은 약봉지에 달라붙어 온 방을 굴러다녔다. 곧 부고장으로 옮겨 갈 이름이었다.

후두암으로 목을 절개한 아버지의 답답한 입에서는 그 어떤 이의 이름도 하나같이, '우워어'였다. 비단 누군가를 찾을 때 뿐만 아니라, 소통의 모든 언어와 감정의 표현이 죄다 고블린이 내지르는 괴성 같았다. 아버지의 세상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이의 이름이 휘갈기는 글자 속에 갇혔다. 방바닥을 내리치는 둔탁한 소음과 함께.


사람도 떠나고 이름들도 덩달아 사라져 갔다.


우워어, 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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