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그 동생 낼 모래 이사한다 카더라. 뒷 동으로 옮긴다 카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어머니의 이사가 될지 모른다. 지난한 세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문패 아래서 멈추지를 못하고 바람처럼 흘러왔다. 이제야말로 백발이 성성한 왜소한 이 여사의 힘겹고 질겼던 긴 표류가 끝점에 와닿은 것이다.
초라한 세간살이는 여전하지만 손수 끌어야만 했던 리어카는 그새 머리가 희끗해진 아들의 손과 용달로 바뀌었다.
그동안 강보에 둘둘 말려 업히고, 아장걸음으로 꽁무니를 뒤쫓던 다섯의 새끼들은 어머니의 품에서 놓여져 뿔뿔이 흩어졌다. 하나는 번개탄과 목숨을 맞바꾸었고, 하나는 수배를 피해 정처 없이 숨어들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또 한 새끼는 도박빚에 눌려 까마득히 먼 지난날에 행방을 감추어버렸다. 어머니가 무릎으로 기면서도 절대 버리지 못했던 품 속의 핏덩어리들이 시꺼먼 멍을 심장 깊숙이 박아둔 채 스스로 짐짝이 되어 남겨지고 버려졌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낡아빠진 잡다한 세간살이들과 함께 족쇄가 되었을 다섯의 짐짝들을 싸잡아 버려두고 멀리멀리 아주 멀리로 이사를 떠났어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온몸에 대못이 박힌 어머니는 바보같이 그 어떤 자잘한 것도 결코 버리지를 못했다.
"웬수같은 새끼들..."
원망인지 분노인지 모호한 나즈막한 넋두리가 삶을 견디는 전부였을 뿐이다.
동생 내외의 이사는 이번이 몇 번째일까.
하늘 아래 옥탑방에서 지상을 향해 조금씩 내려온 게 삼십 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자신 소유의 문패를 달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끌었던 리어카는 고스란히 동생의 등짝으로 옮겨붙었다.
동생 부부의 어깨 위로 나날이 낡아가는 어머니와 형님의 버려진 아들인 조카, 그리고 그들의 피붙이 외아들까지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동생 역시 버리지 못하는 짐짝들이 늘어났고 이삿짐의 군더더기 무게가 쌓여갔다.
어머니는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뱉었다. 평생 소원이던 당신 명의의 100만 원짜리 통장 한 번 가져보고 자식 놈이나마 자기 집따까리 하나 제대로 가지는 꼴을 보고 죽는 것이 이토록 과분한 소망일까. 박복한 년 목숨줄은 왜 이렇게나 질긴지.
내 어머니는 스스로가 짐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버려질 세간들 사이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 놈도 어느 하나 버리지를 못한 채 꾸역꾸역 이삿짐 속에 모든 짐들을 쟁여넣었다. 늙은 어머니의 잃어버린 청춘마저 밀어 넣었다.
또다시 수레는 힘겨운 떠남을 시작한다.
무엇을 버려두고 떠날런지.
내 어머니는, 자신을 버려두고 떠나라 한다.
당신이 못 갔던 길로 자식들은 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