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째의 이사인가, 또 몇 번이나 더 이삿짐을 싸야 할까.
단칸방에서 단칸방으로 옮기는 이사임에도 막상 끄집어내면 리어카 몇 대분이 터져 나왔다. 좁아터진 골방 어디에선가 용케 숨어있던 구닥다리 세간살이들, 앞서서 리어카를 끄는 내 어머니는 그 어떤 자잘한 것들도 내다 버리지를 못했다.
몇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리어카에서 용달로 바뀌지는 않았다. 단지, 등에 업혀 짐짝과 함께 낯선 단칸방으로 옮겨지던 아들이 아장아장 걷고, 또 뛰고 리어카를 미는 세월만 덧입혀졌을 뿐이다.
보따리를 쌀 때마다 어머니는 적어도 두 번은 빌어야 했다. 발목을 붙든 새끼들, 한 둘도 아닌 자그마치 다섯이나 되는 새끼들을 품 안에 넣은 애미의 애원이었다.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고, 조용히 지낼테니 제발 세를 좀 내어달라고... 어머니는 집 없는 서러움을 매달린 리어카에서 긴 한숨으로 쏟아냈었다.
내 어머니는 몇 차례의 이사에도 불구하고 낡아빠진 그 어떤 것도 버리지를 않았다. 다섯의 핏덩어리 애물단지 자식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지친 걸음과 한숨으로 어머니의 젊은 날은 저물어갔다.
남의 소유인 논바닥 위에 연휴가 낀 단 오일만에 집을 짓겠노라고 아버지가 먼먼 퇴계원 땅을 밟았다.
쥐꼬리만큼 남은 마지막 자존심을 팔아, 미친개가 된 둘째 아들놈의 피 같은 몇 닢의 돈을 거머쥔 아버지는 거짓말 같이 번갯불에 콩 볶듯 스레트 지붕이 앉혀진 벽돌집을 물구덩이 위에 올려 세웠다.
꿈도 못 꾸던 문패, 문패가 생겼다.
내 어머니의 손수레가 마침내 멈춰 선 날이었다. 더 이상 새끼를 숨겨두고 낯선 이의 처마밑을 기웃거리거나 통사정을 할 일도, 억울한 내 자식만 나무라야 했던 일들이 다 끝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