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이 선물한 자유.

by 김석철



어떤 이에게 아끼는 난초가 있었다.

누더기 한 벌, 바랑 하나면 넉넉한 인생이었다. 그래서 떠남에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고작 난초 하나가 발목을 붙들기 시작했다. 가벼워야 할 걸음에 천근추가 매달렸다.


내게는 같이 늙어가는 선한 눈을 가진 착한 똥개가 한 마리에 얍삽하면서 해작질로 가끔 속을 뒤집어놓는 츤데레 괭이 형제가 넷이 있다.

그래서 맘 편히 며칠씩이나 집을 비우지를 못한다. 집사인 내가 속 편히 정신줄을 놓고 니나노 지화자 하는 순간 다섯의 애꿎은 생명은 하염없이 배를 곯게 되니, 이틀 이상의 집을 비움에 늘 커다란 걸림돌이 된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구속인 셈이다.


삼일 전에 산등성이 아래의 이웃 할머니댁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들렸다.

할머니의 분가한 둘째 아들이 애지중지하는 중병아리를 순식간에 낚아채서 입에 문 찰나 같은 순간을 현장에서 정통으로 들킨 것이다. 작대기를 머리 위로 쳐들고 저 놈 잡아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부리나케 종종걸음으로 뒤쫓는 할머니를 우롱이라도 하는 듯, 가다 서다를 해가며 여유롭게 도망을 쳤다.

네 마리가 지 애미랑 똑같이 생겨먹어 도시 구분이 안 가지만, 멀리서 설핏 봐도 몬난이의 2세가 분명했다. 잡으라는 멧비둘기와 때까치는 거들떠도 안 보던 녀석들이 애꿎은 병아리만 해코지했으니 입장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다. 분을 삭이지 못한 할머니는 작대기를 쥔 손을 휘적거리면서 잰걸음으로 비탈진 길을 따라 사라져 간 괭이의 뒤를 쫓고 있었다.

나도 괭이를 따라 슬며시 줄행랑을 쳤다.


이러니, 싸돌아다니는 생명체와의 동거는 먹이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들로 내 동심원에 높다란 장벽을 둘러 세웠다.

나를 옭아매는 속박은 비단 백구 용이와 몬난이의 2세들뿐이 아니다.

뒤늦게 이글대는 햇살 아래 심은 땅콩의 어린싹들이 그렇다.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사통팔통 눈 가는 데 마다 온통 땅콩 삐까리인데 고까짓 서 너 이랑이 뭔 대수라고 행여 말라죽을까 밤낮없이 맘이 쓰이는지.

잽싸게 달아나버린 장마의 심통과 만사태평인 게으른 농부의 농땡이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여린 새싹만 죽어나고 있다.


어제 일도 그랬다.

통화 중인 어떤 여인은 누군가를 오지게 씹어댔다. 보나 마나 십중팔구 시시한 사건 내용일 테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부모 죽인 원수 놈과 진배없을 터였다.

막상 내 문제가 되면 세상에서 시시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적당선에서 한 통속이 되어 뉜지 모를 이를 깨물어줬지만, 내가 혹 상대편과 함께 한 자리였다면 똑 같이 상대 편이 되었을 게 뻔하다. 내게는 내용보다는 '누군가'가 백만 배는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별 시덥쟎은 소소한 일들도 옴니버스 인생사에서는 고만고만한 사건이라곤 없다. 타인의 암덩어리가 내게는 부스럼보다 시시할 수 있는 당연함이 오히려 인간적이라 다행이다.


용이와 몬난이의 2세들과 땅콩, 소중한 나의 인연들과 서사들. 불안하지만 설레는 미지의 시간이 안겨준 속박의 틀 속에 갇혀 여전히 어눌한 걸음마를 이어가는 중이다. 동방삭이 된다손쳐도 이 어설픔은 여전할 듯싶다.


사랑과 자유.

그토록 갈구했던 주제가,

'속박'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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