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찬가.

by 김석철



빼떼기죽은 고메 밖에 없는 통영의 욕지도를 넘어왔다. 비탈진 섬, 해풍에 갈라 터진 거친 손으로 닦은 터 위에, 물질 나갔다 온 아낙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소처럼 또 밭으로 나갔다.

항문에 바짝 힘을 줘야 겨우 직립보행이 가능한 땅, 아니 섬, 물이 귀한 욕지도가 토해낼 수 있는 푸성귀라고는 달랑 고메뿐이었다.

장독간이건 평상 위건 햇살이 닿는 빠꼼한 데라고는 죄다 허옇게 말라 빼닥해진 뼉다구같은 빼떼기가 걷어차였다. 해풍이 간지럽히고 태양이 핧아대는 곳 욕지도의 고메는 안방에서 겨우내내 아이들과 함께 누룩 냄새를 풍기며 곰삭았다. 옷이고 똥이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고구마 냄새만 배어났다. 그래서 욕지도는 고메섬이다.


욕지도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둘러앉아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쌀알 하나 없는 거친 보리로만 지은 밥, 꽁당보리밥이다. 꽁당보리밥과 신체건강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미안하지만 별 관심이 없다.

복남이네가 건강 생각해서 꽁보리밥을 둘러앉아 먹었겠나. 보나 마나 몇 톨 들어간 귀하디 귀한 흰쌀밥은 아버지 몫이었을 테고 마른버짐이 핀 복남이를 비롯한 형제들은 배 곪지 않고 꽁보리밥 건수하는 것 만으로 감지덕지했을 거다.

도사리고 눈독을 들이다 보면 가끔 털 난 양심에도 가책이 드는지 아버지가 큰 선심을 쓰는 양 한 숟갈 양보할 때가 있다. 복남이는 어른이 되면 젤 먼저 흰쌀밥을 배 터지게 먹을 거라고 다짐했다. 암만 생각해도 꽁보리밥은 아니었다.


보리밥 하면 방귀다.

괄약근 조절이 마음먹는 대로 안된다.

시도 때도 없이 주책맞게 터져 나오는 방귀, 하품과 재채기, 방귀는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원래 방귀라는 게 소화가 잘 돼서 나오는 건지, 소화가 안 되기 때문에 가스가 차는 건지 모르겠다. 냄새만 본다면야 썩은내 보다는 구수함에 가까우니 필시 소화가 잘 된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은데, 만고 내 생각일 뿐이다.

복남이는 꽁당보리밥 먹고 동네 한 바퀴 달음박질은 특히 조심을 해야 한다. 짝사랑하는 그녀라도 있는 날이면 자칫 낭패보기 십상이다. 항문을 열고 나오는 방구 소리가 시원스럽게, 뿡, 뽀옹, 피식이면 그나마 괜찮다. 달릴 때의 방구소리는, 뽈뽈뽈뽈...


"우와, 엄마 우리 이제 쌀밥 먹을 수 있겠네."

섬약한 어머니의 돌아앉은 등짝 너머 방바닥에 세종대왕님의 백 원, 이순신 장군님의 오백 원짜리 지폐가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막노동판에서 뼈 빠지게 일해 받은 월급이었을 것이다. 치성을 다해 들여다보고 있으면 돈이 뻥튀기가 되는지 어머니는 한동안 미동도 않고 가지런히 정돈된 지폐 더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매 끼니 땟거리 걱정에 외상만 하는 우리 엄마는 왜 맨날맨날 돈이 없는지 궁금했었다. 새끼줄에 걸려 달랑거리는 구공탄도 늘 한 장만 사들고 오셨고, 두부를 사도 언제나 생쥐 볼가심 할 정도도 안될만치 쪼잔하게 사는지를 몰랐다.

왜 우리 가족은 눈만 뜨면 수제비만 먹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꽁보리밥이 아니면 적어도 고메 빼떼기죽 정도는 한 번쯤은 먹어 볼 법도 한데, 어머니는 주야장창 밀가루와 겨우 메르치 서 너마리 헤엄치는 멀건 수제비만 끓여댔다.

어머니가 노가다를 할 때도, 포장마차에서 호떡 장사를 할 때도 변함없이 희멀건한 수제비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멸치 몇 마리, 밀가루로 조물조물 빚어넣은 건더기, 그리고 물과 소금이 전부인 밥상으로도 오감 했다.


그날, 어린 우리 형제의 소원이던 하얀 쌀밥을 먹었는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쌀밥 소리에 어머니의 손은 가늘게 떨렸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내 키 173 센티 중에 적어도 50 센티는 밀가루 수제비가 키워낸 것이 확실하다.

눈깔을 멀뚱멀뚱 뜨고 째려보던 메르치도 한몫을 했다고 인정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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