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걸려 온 전화...1

by 김석철



자고 있었니? 미안, 여긴 밤낮이란 게 없어. 시간이란 자체가 없어서 많이 헷갈려.

열두 시가 넘었다고? 아, 안 잤다니 다행이네.

에이, 그렇게 자책하면 내가 더 미안하지. 니가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괜히 먼저 바람 넣은 건 나였잖아.

사고? 저수지에 굴러 떨어진 걸 왜 애먼한 니가 죽을죄를 진 사람 취급 당해야 하는 거지? 니 혼자라도 그나마 살아남은 게 천만다행이지. 안 그랬음 지금도 우린 사고를 당한 것도 모를걸?

우리 엄마, 아빠 잘 알잖아? 사실 나 어디 잘못 됐다 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줄 알았는데, 대게 의외더라구.

평소 친구들 얼굴 보기에도 쪽팔려 죽겠다며 나가 죽어라 악담을 입에 달고 살더니, 왜 살아남은 니한테 살려내라고 게거품을 물어? 아마, 남들 보는 눈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여기? 나도 아직은 얼떨떨 해. 따뜻하고 먹는 거 자는 거는 걱정 없고...근데, 진짜 따분하다. 재미라고는 일도 없는 게, 음, 뭐랄까, 무덤 속 같은 느낌? 하하, 말하고 보니까 비유가 제법 근사하게 들어맞네.

조금 있으면 천사들이랑 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들이랑 찬양인지 나발인지를 할 시간이야. 나랑 교회랑 무슨 관련이 있다고. 죄다 엎드려 영광을 찬미하라면서 한참이나 머리를 조아려야 해. 난 사실 무지 짜증이 나. 그냥 영광 받으면 되지, 동네방네 외고 패면서 나 같은 사람에게 까지 추앙을 받아야 되냔 말이지. 근데, 배알도 없는지 어떤 인간들은 표정을 미뤄봐서는 살아생전 무슨 은덕을 입었길래 엄청 감격스러워해. 천국에서도 눈물콧물 질질 짜는 게 가관이라니까.

뭐 그냥 슬렁슬렁 산책하고, 몇몇이 모여 대화 나누고 그러지.

에이, 대화란 게 안 봐도 뻔할 뻔자, 미쳐요, 미쳐. 숨통이 턱턱 막힌다니깐.


교회 근처에도 안 가본, 아니지 너 알다시피 내가 예수쟁이 좀 구박하고 다녔니?근데, 나도 너무 궁금해 미치겠어. 미카엘인가 하는 양반한테 슬쩍 물어 볼려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나 싶어 찍소리도 못하고. 내가 왜 이곳에 낙점된 건지 도통 이해가 안 돼. 근데, 나만 천국 무자격자가 아닌 거 있지?생각보다 엄청 많다니까?글쎄, 엊그제는 부처란 양반도 먼발치에서 봤어. 파마나 곱슬머리가 아니던데?


얘는? 나도 죽은 지 일주일도 안된 신삥인데, 그런 거 아직 몰라. 눈치코치로 통빡 굴리기도 바쁜데 지옥을 어떻게 알겠니.

여기 오래전에 온 양반들도 확실히는 모르는 눈치더라구. 어떤 양반은 지옥 그딴 거 처음부터 없는 거라고 목숨 걸고 맹세한다면서 큰소리 팡팡 치던데, 목숨을 건다는 말에 별 믿음이 안 가는 거 있지?


미안, 미안. 전화 끊어야 해.

할 말이 무지 많은데, 또 찬양인지 개나발인지 한다고 집합 호루래기 불어대잖아. 미친다,내가....


뚜뚜뚜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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