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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죽이기

by 김석철





'묵언수행'이라는 게 바로 이런 맛이겠지? 죽을 맛!
인도의 어떤 유명 인사는 매월 하루는 웬 종일 말 한마디도 안 하는 날로 정해두고 행했다는데,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웬만한 빅마우스급은 모르기는 해도 법정 최고형 이상의 형벌일 듯싶은데, 내 지인 중에도 술자리 도중에 10분 버티기 내기를 했다가 질식해 죽는 줄 알았다며 오만상을 찌푸린 일이 있었다. 이 친구가 버틴 지옥 같은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폰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나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숫한 날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는데 말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시도 때도 없이 습관처럼 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면, 역시 문명이란 것은 양날의 검이 확실하다는 결론만 굳어진다.


몇차례 현대 문명의 총아 셀룰러폰(셀 폰, 모바일 폰)에 대차게 맞서다, 애꿎은 잡스만 씹어대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기를 반복했다. 중독이니 습관을 넘어 무의식의 영역마저 잠식당해 버렸는데, 폰과의 단절은 수레바퀴 앞에서 두 발 치켜세운 사마귀 꼴이다.

이틀 전, 늑장을 부리다 후닥닥 출근하던 중 뭔가 뼈다귀 서너 개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들킬래, 아차, 빌어먹을... 조상님 보다 소중한 폰님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반나절 정도 폰이 없어도 대한민국이 망할 리가 없고, 여전히 미쿡의 어벤저스팀이 굳건히 버티는 한 외계 야만 종족이 침입을 해와도 내 일상에 천지개벽은 없을 텐데, 이미 미친 듯이 운전대를 꺾고 말았다.


손바닥만 한 폰에 지배당한 지가 오래다.
알고리즘의 덫에 걸려 선택권조차 조종당하는데 나는 새카맣게 모르고 산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라고 노골적으로 구슬려대는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속내까지 헤아려주는 스마트한 녀석이라고 대견해하던 게, '편향'을 주입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거다.

니 편 내 편의 두 세계가 0과 1의 한계 속에서 존재하는 폰이 내게도 어느 한쪽에 줄을 대라고 밤낮 종용을 한다.

영상 매체인 폰이 주는 편리와 재미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가뜩이나 게으르고 둔한 내 머리통은 '생각'이란걸 잊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틈만 나면 틀어박혔던 도서관에서 맹탕 졸기만 하다 기어 나온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98이던 아이큐가 지금은 얼마 정도로 추락했을까? 전화번호 하나 제대로 외우는 게 없고, 종이지도 한 장이면 첩첩산중도 귀신같이 찾아다녔는데, 이젠 네비 동생이 없으면 앞이 깜깜해진다.

잡스의 전략은 전 세계인의 멍청이화가 틀림없다. 나는 그 희생자 중의 한 명일 뿐이고.


핸드폰, 미워도 다시 한번.
역시, '계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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