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을 토해내며 완강히 버티던 저녁놀이 어둠에 맥없이 밀려나기는 한순간이었다.
낙조의 퇴장은 주린 뱃속의 허함보다 훨씬 강렬한 공복감을 안겨주었다.
무정한 시간은 어김없이 어둠을 불렀고, 산개되는 어둠의 발치를 쫓아 하나 둘 형광색 불빛들이 기지개를 켰다.
열두 시간째, 나는 스무 걸음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선 자리가 곧 화장실이자 식탁이고 책상머리이자 깜빡 졸 수 있는 가면실이었다. 같은 자세, 같은 공간에서 이십 보의 벽을 벗어날 시간은 앞으로도 네 시간이 남았다.
19세의 열여섯 시간, 나는 고작 스무 걸음을 걸었고 국물 없는 메마른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웠고, 작은 물 한 통을 비웠으며, 책가방은 뺀또를 끄집어낼 때 외엔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먹고 마시지 못해도 소변은 어김없이 황달색을 띠고 서너 번 배출이 되었다.
저녁참에는 소변을 조금이라도 오래 방광에 붙잡아 두는 게 똑똑한 처신이라는 사실을 이틀째 들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오줌보가 비워지면 위장도 덩달아 비워진다는 놀라운 사실. 어쩌면 나는 이 놀라운 발견 덕분에 여태껏 잘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행선지는 학교였다.
맨날 보는 31번 버스와 학생들.
나는 31번 버스에서 최초로 탈락된 남겨진 자가 되고 말았다. 창원에서 마산, 한 시간 남짓의 거리가 내 지도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차비가 없었다. 학생할인에 더해 교묘한 칼장난으로 한 장을 더 만들어 버린 버스표, 그 우라질 버스표를 살 돈, 돈이 없었던 것이다.
함바식당에서 얻어온 누룽지가 땟거리의 전부, 새벽녘에 들이킨 그 한 줌의 누룽지가 몇 닢 되지 않는 차비를 목구멍에서 삼켜버렸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차비는, 차비는 있나?"
"예, 좀 남아 있습니더."
차비 떨어진 게 언젠데...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숨어야 했다.
학생이 학교가 아닌 곳에서 표류를 한다는 건, 뉘 집 자식으로 시작되어 결국 갸하고 어울리지 마라로 끝을 맺는다. 차비 하나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끝내 각혈을 하는 말기암환자 아버지와 곁에서 미라가 되어가는 어머니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게 뻔한데 어디든 숨어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동네 뒷산은 장장 열여섯 시간 동안 나의 흔적을 지워주는 학교가 되었다.
잔가지로 얼키설키 지붕 뼈대를 엮고, 눈치껏 준비해 간 박스로 천정을 덮은 후 솔가지로 덧입혔다. 나흘간 문을 연 빨치산 학교였다.
벗들은 따뜻한 도시락 싸들고 학교로, 나는 식어빠진 뺀또를 들고 산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차비가 만들어낸 두 개의 세상이었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후둑후둑. 후둑후둑.
빗물인지 눈물인지. 눈물인지 핏물인지...
열아홉의 청춘에 비가 스몄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눈물 섞인 빗물을 피했다. 반 평 학교에서 더 이상 달아날 곳은 없었다.
교복이 젖고 얼굴이 젖고...어머니의 얼굴마저 젖어들고.
서러운 세월, 남들은 알 수 없었던 젊은 날이 하염없이 비에 녹아들고 있었다.
내 서러웠던 청춘에게 들려주는 연가다.
.
삶이란 시련과 같은 말이야
고개 좀 들고 어깨 펴 짜샤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 보니
괜찮더라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바람이 널 흔들고
소나기 널 적셔도
살아야 갚지 않겠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넌 추억할 테니
세상에 혼자라 느낄 테지
그 마음 형도 다 알아 짜샤
사람을 믿었고 사람을 잃어버린 자
어찌 너뿐이랴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
.
넌 멋진 놈이야
(노라조, '형' 가사 중에서.)
(무단결석을 확인하기 위해 단짝인 동네 친구에게 담임 쌤이 가정방문을 부탁했다.
암울한 집안 사정을 잘 알았던 친구는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아래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결국 뒤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고 먼 훗날 말해주었다. 그 친구, 아직도 차비에 관한 사연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