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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디리 극장의 꿈꾸는 화가... 1

by 김석철


오래전, 마산의 부림시장을 따라 옛 방송국 사옥 쪽으로 내려오면 마주 보고 있는 대조적인 극장 두 군데가 있었다. 지금이야 cgv 같은 대규모 프랜차이즈 상영관이 장악을 했지만, 과거 극장계는 적어도 우리 동네에서는 부산극장을 필두로 한 연씨 집안의 위세가 대단했었다.

부산극장 계열의 상영관 연흥극장과 이름만 거창한 짝퉁 피카디리 극장이 개봉관과 2본 동시 재개봉관이라는 어마한 체급 차이로 맞대면을 하고 있었다.

곧 폐관할 거란 소문이 무성했던 피카디리 극장은 소문과는 달리 간당간당 끈질기게 매주 간판을 새롭게 걸었다. 애마부인의 정면에는 쥬라기 공원의 티라노사우르스가 잡아먹을 듯이 눈깔을 부라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애마부인에서 변강쇠로 간판이 바뀌고, 김밥부인 옆구리 터진날 같은 민망한 제목의 우스꽝스러운 간판이 내리고 올려지는 중에도 티라노사우러스의 험악한 이빨은 여전히 한자리에서 위협을 가했다.

연흥극장의 간판에 살고 있는 랩터나 티라노 사우르스는 금방이라도 천막지를 찢고 포효하며 도로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에 반해 피카디리의 간판은 캔버스의 크기로는 비슷하지만, 일 년 365일이 늘 거기서 그기인 살색 계열의 색깔로 도배되었고, 쥬라기공원의 티라노사우르스인지, 영구의 타라노인지 도통 구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요염한 자태로 지나가는 행인의 가슴팍에 야릇한 흥분을 자극해야 할 여배우의 얼굴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피카디리극장이 진즉에 망하지 않고 그 목 좋은 자리에서 죽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영화가 언제 시작되는지, 언제 한 회 차가 끝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종일 지켜봐도 아, 극장이 아직 안 망했구나를 알 딱 그 정도의 사람들만 들락거렸다. 관객이 한 두 명 들어도 영사기를 돌릴까 궁금했다. 물론, 돌린다. 영사기사 입장에서는 백마자전거, 백조 삼계탕, 옥보단 스탠드빠에서 받아 챙긴 광고료가 있기 때문이다.

다이하드의 블루스 윌리스가 난닝구 바람으로 쏴 갈기는 총알이 건너편 피카디리의 간판에서 가슴골을 드러내고 실실 웃고 있는 누군지 애매한 여배우를 이유 없이 죽여댔다. 피카디리에서 보복 삼아 용병을 가끔 초빙했지만, 람보인척 시늉만 내다 제 풀에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퇴장하고 말았다.


피카디리 극장에는 첫발을 들이는 순간, 어디선가 맡아본 낯익은 냄새가 났다. 쥐포 굽는 냄새, 삼일 방치된 물먹은 걸레에서 풍기는 냄새... 하여간 퀴퀴하면서 비릿한 냄새가 컴컴한 장내와 낡은 의자에 진하게 베여 있었다.

스크린에서는 남녀 배우가 심의를 겨우 통과할 수준의 찐한 배드신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정작 아, 아 교태 비스무리한 앓는 소리만 제대로였다. 몇 번을 돌고 돌은 필름 인지 화면에는 비가 줄줄 흐르고, 가끔 영사기사가 졸았는지 번쩍 번개가 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심심챦게 먹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자에 몸을 깊이 묻어 정수리만 겨우 보이는 몇몇의 관객은 결코 구시렁대거나 영사실을 돌아보는 경우가 없었다. 이만한 돈에 두 편, 재수 좋으면 세 편도 보면서 종일 시간 때울 수 있다는 자체로도 감지덕지였을 터이다.


피카디리의 선전부장 배 모씨는 극장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업계의 산증인이었다. 미주알고주알 별 희한하고 내밀한 정보까지 내게 고자질을 해줬다. 태화극장의 모 사장은 열두어 살 때부터 극장에서 껌을 팔던 똘만이였는데(아주 오래전에는 극장 매점 외, 목에 자판을 걸고 관객들 사이를 오가면서 껌과 엿을 팔았었다), 출세했다는 둥, 마산의 극장사와 업계 종사자들의 내밀한 사생활 등 별별 잡다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거리를 거침없이 떠벌였다.

이 얘기들은 온 시내 극장에 공공연히 다 퍼졌을 것이다. 선전부장 배 모씨는 여러 극장의 선전벽보를 전봇대며 울타리, 으슥진 골목 담벼락에 붙이는 전담맨이었다. 항상 개봉, 재개봉관 할 것 없이 전 극장의 초대권을 한 주먹씩 가지고 다니면서 선심성 유세를 부렸다.

관록이 묻은 낡은 오토바이에는 풀통에세 튄 허연 풀이 덕지덕지 굳어 있었고 빠꼼한 곳 없이 각 극장들의 전단포스트가 둘둘 말려 한가득이었다.

극장 한 곳당 대략 오백 부 전후를 할당받았다. 백 부나 제대로 붙이려나, 가끔 뭉티기로 고물상에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박박 우기지만 알면서 넘어갈 도리 밖에 없었다. 벽보를 붙이는 인간이 씻고 벗고 둘인가 셋뿐인 데다 그들끼리 행님 동생하면서 죽이 척척 맞는 의리로 뭉친 동맹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극장이란 게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가, 장소 제공은 극장, 필름 제공은 배급사로 이원화되어서 일종의 시한부 동업 형태였다.

돈 안 되는 재개봉관은 필름 자체를 상영기간 동안 임대형식으로 판매를 한다. 두어 번 극장을 떠돌다 화면에 비가 내릴 즈음이면 서너 편 퉁쳐 용돈 정도 쥐어주고받아와 걸었다. 전단지, 매표소 창구는 엄밀히 배급사의 소관이었다.

선전부장 배 모씨는 내게 돈을 받아갔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극장 소속도 아닌 셈이니 권리는 확실한데 책임 소재는 따져 묻기 애매한 참으로 부러운 인간이었다.

그러나 이 끗발 좋던 선전부는 전봇대에서, 후미진 골목담에서 가장 먼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나이트클럽, 스탠드바에서나 가끔 얼굴을 비추던 따발총 같은 입심의 사내는 그렇게 서서히 기억에서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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