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역시 감정 표현이 서툴고 거칠었다.
고작 '욕본다', 한 마디가 고마움을 표현하는 최고의 말이었다. 어렵사리 에둘러하는 말 또한 무심하게 툭 던지듯 흘려 놓는 게 전부였다.
미안함이란 감정을 대하는 아버지는 더욱 엄격했고 과묵했다. 인생 자체가 미안함으로 점철된 남자이기에 구태여 입에 올리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적어도 처자식에게만큼은 딱 한 번만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빚과 절망, 암덩어리와 미안하다, 고맙다란 말은 끝내 청산하지 못한 채 떠나가버렸다. 영원한 미완으로 막이 내린 아버지와의 화해는 미안하다, 혹은 고맙다 그 짧은 한마디면 충분했을 터인데. 어쩌면 후두암으로 절개된 목구멍에는 미안하다, 고맙다, 수고했다는 단어들이 겹겹이 퇴적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막걸리와 슬레이트 판때기 위에서 노릿노릿 익어가는 삼겹살을 사이에 두고,
"보소, 여 같이 고기나 한 점 하소."
아버지에게 막걸리와 삼겹살은 화해를 위한 나름 최상의 언어였다.
감정 표현의 서투름은 어머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막걸리와 삼겹살이 있었다면, 어머니에게는 돌아앉아 흘리는 눈물과 긴 한숨이 있었다.
"조상님요, 우짜든지 우리 자석들 좀 잘 봐주소."
어머니가 말로 사랑을 드러낼 때는 제삿밥 앞에 두고 넋두리 같은 소원을 웅얼거리거나, 선생님 앞에서 다 애비 애미가 못나서 그런 거니까 내 새끼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 때였다.
내 아버지 어머니는 곰이 틀림없었다.
야심한 시각, 머리맡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멎었다. 그 인기척은 한동안 숨조차 참아가며 죽은 듯이 나의 머리맡에서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썩이는 이부자리.
어머니였다. 휴가 나온 다 큰 자식 놈의 이부자리 속으로 새우 같은 몸을 밀어 넣은 어머니. 조심조심 등을 살포시 감싸 안은 어머니.
품을 떠난 스물다섯 살의 자식을 감싸 앉은 어머니의 떨리는 숨소리와 박동이 큼지막한 등짝에서 핏줄을 타고 발끝과 정수리, 심장 곳곳을 소용돌이쳤다.
모르는 척, 표현에 무딘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체온만 남겨두고 빠져나간 어머니의 빈 공간에서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새끼란 단어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밤새 시끄러웠다.
"이거, 우리 둘째 놈이 선물해 준 기다. 좀 있어 보이제?"
아버지의 손목에서 시계가 바뀌었다. 해외 근무 할 때 현지에서 산 라도 손목시계가 고속버스표 싸구려 시계로 바뀐 것이다.
"스위스에 납품하는 시계 공장이 어려워져서 한시적으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팝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합니다."
추풍령 휴게소, 고속버스 안으로 후닥닥 뛰어든 세 명의 남자들은 일사불란하게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전광석화, 버스 출발 직전 오분 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각에 거침없이 뛰어든 시계 판매원들 중 한 명은 운전석 옆에서 빠르고 큰 음성으로 외치고, 또 그새 한 명은 객석 통로를 휘저으며 번호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선택의 여지없이 무릎 위에 던져두고 분주하게 오갔다.
5번, 12번... 당첨 축하드립니다.
아버지의 시계는, 그날 17번의 행운을 잡은 세상물정 모르는 둘째 아들이 고속버스 안에서 홀린 듯 산 다이아몬드가 반짝반짝 빛나는 주먹만 한 시계로 바뀌었다.
반짝반짝은 불과 삼일이 채 지나지도 않아 뿌옇게 변했고 닦으면 더 뿌예지는 신통한 시계였다.
라도시계는 아버지와 함께 한 긴 시간여행을 접고 품질보증서가 담긴 케이스 속으로 쉼을 찾아갔다.
고속버스표 허접한 시계는, 단지 둘째 아들 녀석의 선물이라는 이유, 딱 그 하나만의 이유로 아버지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들 덕에 이리 좋은 시계도 선물 받고...자식 키운 보람 있네."
환한 얼굴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고맙네, 아들!"
내 아버지가 단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해 준 날,
그날은 싸구려 시계가 명품을 밀어낸 어처구니없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