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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스토리...3

by 김석철



괜히 심상챦은 몸 상태를 입에 올렸다 삼일째 닦달을 당하고 있다.

요지는 아프면 병원을 가야지 미련 곰탱이처럼 버티고 있냐는 걱정 반, 답답함 반의 말들이다.

나의 어깃장에는 될 대로 되란 식의 무대뽀만 비치나 보다. 고급스럽게 표현한다면, 뭐 생사에 대한 초연함 그런 건데 막상 그렇게 둘러대면 단단히 미쳤군 그럴까 봐 아예 입을 봉하고 있다.

"주사 맞는 게 무서버서 그래!"


두 해 전, 어둑발에 이웃 할머님이 낭창한 걸음을 하셨다가 '웰 다잉 교육'을 듣는데 월 이만 원이면 되니까 같이 수강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장시간 교육내용을 포함 곧 맞닥 뜨릴 본인의 죽음에 대한 소회를 늘어놓았다.

아직 저는 살 날이 한창이니까 괜찮다고 말했다 옳다구나, 요놈 잘 걸렸다 싶었는지 죽음에 순서가 있냐부터 발동이 걸려 강사로 빙의해 일장 훈시를 늘어놓았다.

"아까 영정 사진에 쓸려고 사진을 뒤적이는데..."

암만 찾아도 자기 혼자서만 찍은 독사진이 하나도 없더라면서 혀를 쯧쯧거리며 장탄식을 토했다.

"팔십이 먹도록 뭐 했을꼬."

웰 다잉의 첫걸음부터 단단히 꼬여버린 독사진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속에서만 존재했던 한 인생이 그나마 이 사진이 이쁘게 잘 나왔다며 오래된 사진을 쑥 내밀었다.

안개꽃이 가슴에 가득 피어난 여인이 머리에 사각모를 이고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곁에 둘러선 형제들이 어머니보다 더 크고 밝게 웃고 있는 사진 하단에 적힌, 둘째 대학 졸업식날이란 글자가 솟구쳐 올랐다. 할머니의 영정사진 속으로 달려갔다.


간밤에도 나는 노릿하게 잘 익은 오징어이자 쥐포 신세였다. 대화의 7할 정도가 내 병명조차 모르는 병세와 병원 거부에 대한 성토였다.

내게 달라진 것이라곤, 속이 쬐금 불편하다는 사실과 계획했던 시간표를 서둘러 앞당긴 정도가 다인데 웬 유난들일까 싶었다.

"왜 꼭 살아야 하는데? 내가 반드시 살아야만 되는 이유, 그 이유를 납득시키면 당장이라도 병원에 갈께."

"죽음 또한 여러 갈레의 여행길 중의 하나라고 봐. 단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만 빼고."

삶도 모르는 주제에 죽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 나이 되어서 확실히 깨달은 삶의 교훈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란 사실 하나다. 모른다란 글자 하나를 깨우치기 위해 험한 길을 돌고 돌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는 오롯이 내 의지만으로 마지막 여행길을 준비한다. 물론 그 떠날 때는 종잡을 수 없다. 골골 팔십이라고 어쩌면 준비만하다 벽에 똥칠할런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괜챦고.


나의 '네버엔딩 스토리'는, 바벨탑을 쌓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매 순간이 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꼭두각시놀음이었다면, 마지막 엔딩 스토리만큼은 내 손으로 기록할 것이다.


삶으로부터의 해방,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또 더 내려놓을 짐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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