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이 더 짧은 까닭은?

by 김석철



꼭, 반드시를 더더욱 강조하는 표현이 뭐가 있을까.

낮에 걸려온 통화 중에 확실히 알았다. 그동안 강조를 나타내는 약방 감초 같은 단어는 아무 데서나 갖다 붙일 수 있는 '졸라'였다. 실상 졸라라는 단어는 순화시켜서 그렇지 입에 담기에는 좀 거시기한 '0나'가 맞다. 이런 싸구려 티 나는 단어 말고도 얼마든 강조에 강조를 더할 수 있는 표현은 바로, 같은 단어를 주저리주저리 반복해서 늘어놓는 것이다. 같은 말 하고 또 하는 엄니의 고약한 말투 역시 뭔가를 졸라 강조하고 싶은 속내였는데, 그저 할마시 습관성 잔소리쯤으로 가볍게 여긴 게 좀 찔린다.


내가 자리해야만 하는 꼭,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란 특별한 이유가 있기는 한 걸까?

하도 정신이 사나워 단체카톡방에서 슬그머니 꼬랑지를 말고 숨어버린 내게 말이다.

삼선 슬리퍼에 덜름한 반바지, 퍼런 나시 차림새로 시원한 친구사무실에서 퍼질러 있던 나른한 오후. 지부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세시부터 시작되는 월례회에 꼭, 필히, 반드시, 죽어도 참석해 달라는 반강제 출두 명령이었다. 중요한 의제를 오늘 매듭지어야 한다는 내용을 속사포처럼 일방적으로 쏟아내고는 참석을 압박했다. 졸라 일방적으로 한 말 또 하고 또 하면서.

지금 시간이 한 시, 세시까지는 용 빼는 재주가 있어도 참석이 불가한 시간이다. 늦어도 괜찮다.

지금 내 꼬라지가 모임에 참석할 상황이 아니다. 홀딱 벗고 있지는 않을 거 아니냐.

솔직히 모임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톡방에서도 조용히 나가기 했다. 그게 왜?

처음부터 나의 의견 따위는 아예 묵살하기로 작정하고 전화를 하지 않고서야 재깍재깍 각본처럼 말문을 닫게 할 수는 없을텐데...결국, 극단의 강조 용법에 귀신 씐 듯 승낙을 하고 말았다.

거제에서 부산 서면까지는 그야말로 산 넘고 강 건너고, 깊은 바닷속을 지나야 한다. 물론 침매터널이다.

직통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지만, 주차 관계로 편도요금 6000원의 직행버스에 부랴부랴 몸을 실었다.

구불거리는 해안선을 따라 버스는 육중한 몸체를 하고도 날렵하게 내달았다. 덕포에서 김영삼 대통령 생가가 있는 외포를 거침없이 지난다. 가덕도를 가로지르는 대교의 아름다운 풍광과 검푸른 바다는 언제 봐도 혼을 쏙 빼놓는다. 늘상 보는 낯익은 풍경임에도 바다가 주는 넘실거림은 언제나 가슴을 설렌다. 버스는 매미의 성을 지나고 철조망에 파묻힌 가덕도의 대통령 별장을 지난다. 현수교 아래는 푸르디푸른 청정해역의 물결이 와락 안겨와 엉겨 붙는다.

호출 전화를 받고 썩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멀미 때문이었다. 몇 달 전 같은 버스, 같은 노선으로 모임에 갔었다. 한 시간 남짓 그 험한 해안길을 얼마나 내달렸는지 속이 머슥거리고 급기야 토가 나올 판이었다. 풍광이고 나발이고 어찌저찌 부산에 도착은 했지만, 늦은 시각에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다. 낮에는 그럭저럭 경치에 빠져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모임 후의 늦은 시간에는 반쯤 죽음 상태가 될 게 뻔했다.

멀미의 괴로움을 겪고 나니, 웬만해선 직행버스에 몸을 담기가 내키지 않았다.

이러구러 몽그작거리며 꽁무니를 뺐지만 작당을 하고 덤비는 지부장의 등쌀에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다.



역시나였다. 꼭, 필히, 반드시는 내게는 별 해당이 안 되는 엄포였다. 문단 행사에 소극적인 주변인인 내가 딱히 나설 일도 없는 사안이었으니, 그냥 내내 머리만 주억거리다 녜녜, 뜻대로 하시구려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 액스트라역에 충실한 시간을 때웠다.

고기 궈 먹으며 같은 말 또 하고 하고...문단의 나아갈 바와 현시대의 예술과 창작에 대해 침 튀기며 성토하다, 니 글이 어쩌고 저쩌고. 하여튼 그렇게 파장을 했다.

정작 큰일은 이제부터였다. 지하철을, 그것도 환승까지 해가며 타야 했고, 방향조차 헷갈리는 하단의 승차장에서 물어물어 눈치껏 거제행 버스에 올라야 한다. 명지와 가덕도를 지나고 매미의 성을...하, 죽겠다.

괜히 고기 줒어 먹었나 보다.


다행이다.

한번 타 본 버스라고 생각보다 거리도 짧아졌고, 운전기사님의 곡예에 가까운 현란한 운전에도 적응이 되나 보다.


역시, 떠나는 길보다는 돌아오는 길이 가까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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