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

by 김석철





포롱포롱 참새가 떼 지어 날아들었다.
날 선 '가시덤불'이, 어떤 이에겐 보금자리가 되기도 한다.

맛있는 잎사귀나 구미를 당기는 열매를 달고 있지도 않은 별 보잘것없는 나무에 가시 하나만큼은 위세가 제법 등등하다.
가지고 지킬 게 많은 이들의 높디높은 담장 너머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경계심이야 비단 가시만 감추고 있겠냐마는, 아무리 봐도 탱자는 독기 맺힌 가시를 드러낼 만큼의 탐스러운 게 없는 나무다.
야무진 가시와 단단한 목질로 인해 울타리목이나 낫 같은 농기구 자루로 일상에 친근하게 맞닿아있다는 점을 제하고는, 과실수나 땔감용 화목으로서의 가치도 영 볼품이 없는 그저 그런 나무의 하나다.

오렌지족, 귤족, 금귤의 다르게 불리는 낑깡족, 마지막으로 탱자족. 한때 젊은이들 세대의 등급을 나누는 용어였다. 내세울 거 하나 없는데, 꼴에 가시만 요란스럽게 매달고 있으니 최하위 불명예는 탱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건강에 아주 좋은 거라며 손수 담았다는 부연 설명과 함께 자그마한 노란 병을 내밀었다. 유자차인가 했더니, 탱자차란다.

내 밭 주변에도 울타리목으로 어른 키만 한 탱자나무가 둘러쳐 있지만 애기 주먹보다 작은 노란 땡자가 열리는지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날카롭고 억센 가시만 앙상하게 남은 가지 사이사이로 말라비틀어져가는 탱자가 겨우내 참새의 희롱거리가 되는 걸 가끔 지켜봤을 뿐이다. 그 있어도 없어도 그뿐인 탱자가 건강식이라는 꼬리를 달고 내 앞에 놓였다.

역시 탱자였다. 아무리 설탕에 쩔었다고는 하지만 탱자만 가지는 특유의 맛은 어린 날 먹을 게 없어 저거라도 한번 하는 심정으로 한입 베어 물었다 퇘퇘하고 뱉어냈던 기억만 진하게 떠올랐다.

들짐승들 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작은 열매가 뭐 그렇게 소중한지 가시 하나만큼은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다. 아마도 씨를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슴도치 제 새끼 함함하는 것과 다를 게 있을까.

개두릅이란 이름으로 쌉싸름한 맛을 내는 엄나무의 어린 순이 꽤나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가시 하면 탱자나무와 견줄 수 없을 대표적인 나무다. 빼곡히 둘러쳐진 가시는 쳐다만 봐도 위협적이다.

농막 아래의 경사진 밭에는 제법 기세가 당당한 엄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다. 새순이 눈을 튀우기 무섭게 누군가의 손을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몇 해 동안 반복이 되었다. 올해만큼은 반드시 그 알싸한 맛을 보고야 말리라, 오며 가며 오매불망 지켜보면서 때만 노리고 있었다.

나쁜 인간들이다.

수확 직전, 홀라당 씨를 말려버리고 가시만 잔뜩 남겨둔 엄나무를 보는 순간 엎어진 기대만큼의 화가 치밀었다. 적어도 주인인 나도 입맛 정도는 볼 수 있게 한 둘은 남겨두는 게 도둑놈의 상식 아닌가.

내 못 먹는 거 남이 먹으면 배가 더 아픈 법이다. 그 꼴은 못 보지.

"어라, 저기 있던 엄나무가 오데 갔노?"

마을 할마시가 물었다.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다. 그 물증은 틀림없이 저 할마시 똥으로 나왔을 것이다.

탱자와 개두릅나무는 곤두선 가시만큼이나 나와는 인연이 쉬 가까워지지 않는다.


'귤화위지'
귤나무가 회수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제나라의 재상 안영이 초나라 영왕에게 뻑큐를 날린 말이다.

'땡자탱자 퍼질러 논다'
탱자탱자란 말이 쓰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탱자,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는데, 가히 좋은 뉘앙스로 따라붙는 말은 아니다. 탱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할 노릇이다.

탱자 가라사데...
니들이 탱자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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