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쇠는, 석두.

by 김석철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한심할 정도로 사람 이름을 못 외우는 편이다. 얼굴을 보면 세월에 관계없이 누군지 기억은 나는데 막상 이름 석자가 떠오르질 않으니, 어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먼저 아는 척 하기에 애매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시력도 나빠서 오만상을 찌푸린 채 상대를 쳐다보니 한때 싸가지가 없다란 오해를 받기 일쑤였다. 상대방이 살갑게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하면 같이 호명 정도는 해 주는 게 기본인데 어어하며 얼버무리고 주춤대니 분위기 꼴이 영 말이 아니다.


주차를 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동안 어둑발이지만 얼굴이 꽤나 익는 사람이 두어 발 뒤에서 따라오는 걸 알았다. 뒷 선 이 역시 긴가민가 선뜻 아는 척을 하지는 못하고 적이 곤란해한다는 느낌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이 어색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후딱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해버리는 게 상책인데 목적지가 같으니 그 역시 답은 아니었다.

"니 돌쇠 맞네!"

조의금 봉투에 쓰이는 이름을 곁눈질로 흘깃 훔쳐보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이 시간의 간격이란 게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를 잘 말해주었다.

"근데, 억수로 미안한데 니 이름이..."

이런 계면쩍은 상황이 장례식장을 벗어날 때까지 숫하게 반복될 텐데, 예정된 단체조문의 시간 이전에 잽싸게 자리를 뜨야겠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발동이 걸린 동창 녀석은 알싸한 알콜 기운에 취해 파란만장했던 인생사와 넋두리까지 거침없이 쏟아내며 발목을 잡았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구구절절한 인생사를 듣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댓구를 하면서도 속내는 그저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새 면식만 기억나는 지인들이 속속 합석을 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엇비슷한 피곤함이 되풀이 됐다.


깜빡 잠들었다 깬 시각이 2시 12분이었다.

그 야심한 시각에 들어와 있는 까톡, 11시 반이 찍힌 메시지였다. 낯익은 사진들로 심야의 불청객 누군지 단박에 감을 잡았다.

상대방의 전화번호가 내 연락처에 등록되지 않아도 카톡이 연결된다는 사실을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참으로 일방적이면서 이기적인 연결고리가 아닌가 싶어 못내 찜찜했었다.

인연에 대한 선택권은 오롯이 심야의 낭인인 상대방에만 있는 셈이고 차후 끝난 인연에 대해서는 일말의 미련조차 두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했다. 활자와 이모티콘으로만 연결된 생기 없는 소통은, 표정이나 말투 설핏 지나칠 자그마한 몸짓으로 진정성을 추론하는 버릇이 든 내게는 가까워질 수 없는 생경함이다.

고작 달포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성도 이름도 아예 깜깜했다. 이름맹인 내게 유명 연예인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단디 기억 좀 하라고 놀려댔던 사실만 또렸했다.

담에 행여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불러야 하나. 어이, 얌마, 이쁜아... 또 슬쩍 자리를 피해야 하나. 별의별 시답잖은 문제로 아리까리한 인연들과의 조우는 항상 마뜩잖은 스트레스다.

누구에게나 한 둘의 결점은 있게 마련이다.

이름을 귀신같이 기억해 내는 친구 녀석은 말귀가 어두워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얼척없는 소리를 가끔씩 한다. 이름을 기억 못 하는 나와는 달리 미주알고주알 자질구레한 과거사를 죄다 기억하고 한번 들은 이름이면 번개같이 기억해 내지만 정작 말귀가 어두운 친구.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그나마 이름맹인 내가 조금은 더 낫지 않겠냐는 아전인수 격 자위를 해본다.

나는 아이큐가 98이다.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간단한 수학적 계산도 잼병이다. 이름이나 숫자에 약하니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과목에서도 늘 낙제점이었다. 역사과목을 무지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 성적은 늘 신통치가 않았다. 몇 년도에 누구 아무개가 무슨 사건의 주인공이었는지는 이름과 숫자와는 상극인 내게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프랑스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면 어떻고, 이탈리아인 나브리오네 디 부오나파르테가 동인일이면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올해가 2025년임이 헷갈려 구월쯤 들어서야 제대로 알게 된 굴퉁이 돌쇠에게 속고 속이는 권모술수나 득실을 복잡하게 계산하는 일은 떫은 감이나 다름없다.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작품, 집필계획 이런 게 아니라 고작 십육 절지 한 페이지 분량에 불과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환갑, 그것도 별별 우여곡절을 다 겪은 내가 자기소개라고 하는 고백 앞에서 썼다지우기만 되풀이 하다 열흘 이상을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평생에 걸쳐 고민해 왔건만 해답의 근사치에도 미치지 못했음만 절감을 했다.

삶의 루저라고 고백했다. 그래서 오기만 남았다고 악을 썼다. 우습게도 인생, 그래도 살만하지 않냐고 자조했다.

이제 자기소개서를 완결하려 한다.

숫자도, 이름을 외우는 일에도 멍청한 돌대가리인 나의 마지막 소개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